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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칼럼]못 갚으면 안 갚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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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다한 빚은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허랑방탕했던 것도 아니고 그런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빚 부담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남들처럼 학교 다니고 졸업해 취직해서 직장 다니며 결혼하고 비좁은 집 한 칸 구해 가족과 비비대며 절약하고 살아왔는데도 그렇다.

그래도 집안에 우환이 없고 직장에서 잘리지만 않으면 자린고비 소리를 들을지언정 씀씀이를 줄이고 빚을 조금씩 갚으며 버텨보지만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가족 중 누군가 몹쓸 병에 걸려 막대한 치료비가 필요하게 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 벌이가 중단되면 대책이 없다. 주식투자에 손댔다가 깡통을 차거나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면 그때부터 인생은 지옥이다. 이자도 갚지 못할 정도가 되면 무능력자나 인생실패자, 패륜아 취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수치심과 무력감, 좌절감에 자살도 생각해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행히 이런 이들을 위한 제도가 있다. 법원이 운영하는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금융기관 간 협약에 의거해 신용회복위원회가 운영하는 프리워크아웃과 개인워크아웃이다. 개인회생과 개인파산은 채무 원금의 일부나 전부를 탕감해주지만, 프리워크아웃과 개인워크아웃은 원금에는 손대지 않고 이자를 일부 줄이고 상환기간을 연장해준다.

경제위기로 이러한 개인 채무조정 제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올 1~5월 중 개인회생 신청은 3만684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만2760건에 비해 62%나 늘어났다. 개인파산 신청은 2만9388건에서 2만6788건으로 다소 줄었지만, 이는 심사가 엄격해져서 채무자들이 상대적으로 이용하기 쉬운 개인회생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상반기 중 개인워크아웃 신청은 3만7230건으로 전년 동기의 3만8923건에 비해 다소 줄었으나, 프리워크아웃 신청은 5953건에서 8275건으로 39%나 늘어났다.

최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은행권에 1개월 미만 연체자에 대한 프리워크아웃 활성화를 촉구했는데, 이는 필요한 조치다. 3개월 이상 연체자를 대상으로 하는 개인워크아웃과 1~3개월 연체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리워크아웃의 앞 단계에 해당하는 1개월 미만 연체자에 대한 프리워크아웃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과다채무자에게 조기에 숨통을 틔워줄 뿐 아니라 은행들 자신의 부실채권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법무부가 도산관리기구(일명 파산청) 신설을 위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마련해 올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하기로 한 것도 적절한 조치다. 법원이 맡고 있는 파산 관련 업무 중 재판 기능만 제외하고 채권자협의회 구성, 파산관재인 선임 등 행정업무는 모두 파산청으로 이관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파산 절차가 보다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정부조직 확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안 갚아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면 누가 성실하게 갚으려고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 채무조정 제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증대시키는 효과보다 채권자의 도덕적 해이를 감소시키는 효과가 더 중요하고 클 것이다.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과 관련된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줄여줄 것이다.

우리 은행들은 부동산 담보만 확보하면 대출을 해주고는 상환이 잘 안 되면 인정사정 안 보고 추심에 들어가 채무자를 못살게 굴곤 한다. 채무자가 파산해 채권회수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식이 은행원들의 뇌리에 뚜렷이 박히면 은행의 부실한 대출이나 약탈적 대출이 많이 억제될 것이다.



이주명 논설위원 cm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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