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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잡네, 폭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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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진 기자] 서울에 첫 폭염경보가 발령된 1일. 오후 12시 무렵 종로구 누상동에 살고 있는 백미자(89)씨는 이미 지친 기색이었다. "집에 있으면 무척 더워요. 어지러움도 심하고...잠도 제대로 못 자고 아주 무더워."

이 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은 35도였다. 그러나 방 안에 들어서자 온도계는 36.9도를 나타냈다. 백씨는 골목길을 바로 마주한 좁은 방에서 홀로 산다. 어두운 방 안에는 담요 한 장이 깔려 있다. 작은 창이 하나 있었지만 바람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백씨는 다리의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 못했다. "다리가 몹시 아파 선풍기를 트는 것도 힘들다"는 백씨는 "약 받으러 약국에 나가야 하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전아진(83)씨는 반지하 단칸방에 불을 끄고 누운 채 선풍기로 버티고 있었다. "선풍기가 하도 뜨거워져서 물수건을 올려놨어요. 그래도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 전씨의 수입은 기초노령연금 9만원이 전부다. "해가 지면 움직이려고 참고 있었다"는 백씨의 반지하방 실내 온도는 이미 34.5도였다.

최근 연일 폭염이 계속되면서 노인 건강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통계상으로 폭염에 가장 취약한 것은 60대 이상 남성이다. 올해 6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발생한 사망자 7명 중 5명은 70대 이상 고령자였다. 8월 초인데도 지난해 여름 폭염 감시 기간인 7월 `일부터 9월 3일까지의 전체 사망자 수 6명을 이미 넘어섰다. 지난해 역시 6명 중 5명이 82세에서 91세의 고령층이었다.

특히 도심 저소득층 독거 노인들은 더위를 피할 방법이 없다. 2012년 현재 독거노인 119만명 가운데 ‘빈곤층’은 77%인 91만명에 이른다. 이 중 42.5%에 달하는 50만명이 50만원 남짓한 최저생계비로 삶을 유지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한 만큼 폭염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2008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독거노인 냉난방 실태조사에 따르면 독거노인 3명중 1명(31.7%)이 열사병과 열경련 등 폭염으로 인한 질병을 겪고 있다. 폭염이 덮쳐도 59.8%는 자신의 집에서 더위를 피한다. 질병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시원한 곳을 찾아 움직이기도 어렵다.
정부는 민간기업의 후원을 받아 2일 전국 쪽방촌 거주 노인 1555명과 독거 노인 2400여명에게 쿨매트와 선풍기를 전달했다. 지난달에도 복지부가 독거노인 1만명에게 선풍기 5000대와 대나무 돗자리 5000개, 영양제 1200개 등을 지원했다.

그러나 선심성 응급조치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울시의 경우 '폭염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꾸리고 주민센터, 복지회관, 경로당 등 3733곳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했으나 홍보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날 누상동에서 만난 심국영(74)씨는 "구청이나 동사무소에서 안내를 해 준 적이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통인시장 입구 정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던 방순원(79)씨도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고 했다. 한편 장재연 환경운동연합공동대표는 지금까지 노인이나 저소득층의 혹서기 실태조사가 제대로 된 적이 없다"며 "이와 관련해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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