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드라마, 뮤지컬로 돌아오다 - 창작뮤지컬 '파리의 연인' 리뷰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드라마컬. 드라마(Drama)에 뮤지컬(Musical)이 더해진 합성어로, TV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칭하는 말이다. 가히 2012년 한국 뮤지컬 시장은 드라마컬 열풍이다. 예전에는 '미녀는 괴로워' '라디오 스타' '싱글즈' '드림걸즈' 등 영화를 뮤지컬로 옮긴 무비컬(Moviecal)이 대세였다면, 대중에게 익숙한 히트 TV 드라마의 크로스오버는 뮤지컬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올랐다. 소극장 연극 '옥탑방고양이'와 '연애시대'는 모두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며, '궁'과 '커피프린스 1호점' '환상의 커플' '막돼먹은 영애씨' 등 히트한 TV 드라마들이 뮤지컬로 갈아타고 일제히 무대로 나왔다. 이유는 하나다. 대중에게 검증된 콘텐트를 무대에 올릴 때 흥행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흥행과 완성도는 전혀 다른 얘기다. 철저히 원작의 인기에만 편승해 '날림'에 가까운 완성도의 드라마컬이 적지 않은 것이 국내 뮤지컬 시장의 현실이다.
최고 시청률 57.5%를 기록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TV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이 드라마컬 대열에 합류했다. '파리의 연인'은 "애기야 가자" "내 안에 너 있다" 등 수많은 유행어를 양산한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 격인 작품이다. 영화배우 박신양과 김정은이 주 활동 영역을 TV로 확장하는 계기가 된 '파리의 연인'은 기존의 신데렐라 로맨스를 탈피해 아시아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12개국에 수출되며 초기 한류 열풍에 큰 몫을 담당했으며, 자체 드라마로 리메이크된 필리핀에서는 국민 드라마로 등극하기도 했다.
뮤지컬 '파리의 연인'(제작 제이콘컴퍼니ㆍ㈜뮤지컬해븐ㆍ㈜CJ E&M | 디큐브아트센터, 5월 30일까지)의 내러티브는 기본적으로 TV 드라마와 동일하다. 20회 분량의 에피소드를 2시간 20분 러닝타임으로 각색한 뮤지컬은 영화감독을 꿈꾸는 프랑스 유학생 강태영(방진의ㆍ오소연)과 재벌 후계자 한기주(이지훈ㆍ정상윤), 기주의 조카 수혁(런ㆍ이현ㆍ장우수)의 삼각관계를 펼쳐놓는다. 1막의 무대는 프랑스 파리이며 2막은 서울이다. 1막은 로맨틱 코미디답게 '달달'한 느낌으로 일관한다. 사랑에 빠지는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는 아름다운 파리 광장과 근사한 파티, 열정적인 물랭 루즈 장면 등과 어우러져 경쾌하게 흐른다.
반전(反轉)은 2막부터다. 세 남녀의 본격적 삼각관계와 출생의 비밀 등 '막장' 느낌 요소들이 마구 쏟아진다. 제작진들은 이미 관객들이 TV 드라마를 통해 철저히 복습을 마쳤다고 여긴 것 같다. '점프 컷' 투성이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구축은 헐겁고, 극의 두 축인 기주와 태영의 불붙는 로맨스의 과정은 비약과 생략으로 일관한다. 1막에서 선하고 바르던 청년 수혁은 2막에 오면 (아무 이유 없이) 사랑에 분노하는 악역으로 돌변한다. 뮤지컬 '파리의 연인'은 8년 전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지적 받은 약점들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아니, 내러티브 측면에서만 본다면 오히려 약점들이 강화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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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一短)이 있으면 일장(一長)도 있다. 뮤지컬 '파리의 연인'은 내러티브의 태생적 한계를 근사한 볼거리로 만회하려 한다. '맨 오브 라만차' '나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을 연출한 구스타보 자작의 무대는 세련됐다. '파리의 연인'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재생되는 히트곡 '너의 곁으로'가 빠졌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조이 손이 작곡하고 이희준이 작사한 노래 25곡은 귀에 쏙쏙 박힌다. 파리 배경에 반 고흐의 명화 '별이 빛나는 밤에'를 사용한 것이나 무대 위의 등장인물들을 조명 효과 실루엣으로만 표현한 장면들은 재기 발랄하다. 뚜껑은 열렸다. 뮤지컬 '파리의 연인'은 드라마컬의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까. 공은 관객들에게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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