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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인사이드스포츠]남북 스포츠, 교류의 작은 희망 쏘다

최종수정 2018.09.13 06:02 기사입력 2012.01.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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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막식 때 남북한 선수단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동시입장하는 모습.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제1회 동계 청소년 올림픽이 지난 23일(한국시간) 막을 내렸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획득해 독일, 중국, 오스트리아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대회는 공식 순위를 밝히지 않았다. 경쟁보다 우의와 친선을 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꿈나무들은 분명한 소득을 얻었다.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해 2014년 소치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전망을 밝게 만들었다.

대회가 열린 인스부르크는 북한과 상당한 인연이 있는 도시다. 북한의 한필화는 그곳에서 열린 1964년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째로 메달을 따냈다. 아시아의 첫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는 일본의 이가야 치하루다. 그는 1956년 코르티나담페초(이탈리아) 대회 스키 남자 회전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70개국 명단에서 북한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시아 나라로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이란, 일본,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레바논, 대만, 우즈베키스탄, 몽골 심지어 필리핀과 네팔도 출전했다. 북한은 1992년 알베르빌(프랑스) 동계올림픽에서 황옥실이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다.

북한은 국제무대와의 단절을 선언하지 않았다. 2010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회 하계 청소년 올림픽만 해도 선수단을 출전시켰다. 5개 종목에 11명의 선수를 파견한 북한은 김성철이 역도 남자 62kg급에서 금메달을 들어 올렸다. 유도와 다이빙 등에서도 은메달 1개와 동메달 3개를 더해 메달을 획득한 84개국 가운데 40위를 차지했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 11개,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를 얻어 중국(금 30 은 16 동 5)과 러시아(금 18 은 14 동 11)에 이어 3위에 올랐다. 대회는 동계 청소년 올림픽과 같이 공식 순위를 집계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충분히 의미 깊은 기록이었다. 1948년 런던 하계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이후 올림픽에서 거둔 최고의 성적이었다.

북한은 지난 12월 22일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3대 세습과 관련한 정치 문제는 스포츠에까지 영향을 미칠까. 아직 기류에 큰 변화는 없다. 북한은 현재 2012 런던 하계올림픽 출전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지도중인 김정은(왼쪽 두번째)의 모습.

북한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의 스포츠 강국이었다. 한필화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육상의 신금단은 북한이 1964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포기해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여자 중거리의 최강자로 불렸다. 한때 400m와 800m의 세계 최고기록을 보유했던 까닭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효창운동장에서는 “문전으로 쇄도하라우”와 같은 억센 평안도 사투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아시아의 황금 다리’로 불린 최정민을 비롯해 북한 출신의 우수 선수들이 1950, 60년대 국가 대표팀에서 활약했기 때문이다. 손기정, 최윤칠 등 우수 마라토너들의 출신지 역시 북한이었다.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한반도 북쪽 지역에서는 우수한 선수들이 꾸준하게 배출됐다. 그러나 1980년대를 기점으로 남과 북의 경기력 차이는 급속도로 벌어졌다.

북한이 이번 동계 청소년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은 이유는 확인할 길이 없다. 런던 올림픽 출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걸 보면 3대 세습과 관련한 정치적인 문제는 아닌 듯하다. 지난 몇 년 사이 남북 관계는 다소 경색됐다. 스포츠 쪽에서도 분위기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이 같은 형국에 오히려 북한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을 주고 교류의 물꼬를 트는 건 어떠할까. 미래의 일이지만 북한의 경기력을 높여 놓으면 ‘코리아’는 분명 통일 이후 각종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31일부터 2월 3일까지 중국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시에서 '2012 인천평화컵 국제유소년 축구대회'를 개최한다.(사진=인천 유나이티드 제공)

동독과 서독은 통일 전에도 모두 강력한 스포츠 실력을 뽐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종합순위는 각각 2위와 5위였다. 1990년 통일 이후 처음으로 출전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United Germany(대회조직위원회 공식 표기)’는 독립국가연합(옛 소련)과 미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후 2008년 베이징대회 5위까지 하계올림픽에서 톱 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동계 올림픽에서의 흐름도 다르지 않았다. 동독과 서독은 1988년 캘거리(캐나다) 대회에서 각각 2위와 8위에 자리했다. 통일 이후 처음 출전한 1992년 알베르빌 대회에서는 1위로 올라섰다. 승승장구는 이후 계속 유지됐다. 릴레함메르 대회 3위, 1998 나가노 대회 1위,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2위, 2006년 토리노 대회 1위, 2010년 밴쿠버 대회 2위 등 단 한번도 3위 밖을 이탈하지 않았다.

때마침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처음으로 남북 스포츠 교류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31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서 남북한 유소년 축구팀이 참여하는 ‘2012 인천평화컵 국제유소년(U-14) 축구대회’를 연다고 발표했다. 이 대회에는 인천 구단의 유소년팀인 광성중학교를 비롯해 북한 4ㆍ25축구단 유소년팀, 중국 윈난성 선발팀, 일본 프로축구 요코하마 마리노스의 유소년팀 등이 출전한다. 하나의 작은 남북 스포츠 교류가 이뤄지게 된 셈이다.

1991년 남북 단일팀 ‘코리아’가 이룬 여자 탁구 단체전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청소년 축구 세계선수권대회 8강의 환희를 스포츠팬들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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