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예산처리'… 우린 어떻게 해요?
[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연말 예산 시즌, 여야의 대치는 참 지루한 재방송이다. 올해도 법정 처리기한(12월 2일)이 지난지 오래, 국민들은 9년째 입법부의 불법 파업을 지켜보고 있다. 문제는 작품성도 흥행성도 없는 국회의 재방송 때문에 당장 밥을 굶고, 병원에 가지 못하는 국민들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국회의 예산안 늑장 처리로 조마조마한 겨울을 나고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다.
강북구 미아동에 사는 김명자(가명·70)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근근이 생활하는 독거노인이다. 아들이 있지만, 김 할머니를 모시지 않는다. 날씨가 추워지면 난방비가 더 들지만, 요사이 강추위엔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들에게 소득이 있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도 될 수 없었던 김 할머니는 최근 동사무소 직원의 설명을 듣고 기대를 품었지만,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동사무소 직원은 "내년 1월 1일부터 부양의무자의 소득 기준이 완화돼(379만원) 할머니도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예산 처리가 늦어지면 자격 심사 등에 시간이 걸려 1월 급여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전기요금이 무서워 장판도 켜지 못하고 냉방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만 37개월 장애아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금자(가명·30세·송파구 거여동)씨도 힘겨루기를 하며 예산안 처리를 미루는 정치인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내년부터 취학 전 장애아동 양육수당을 지원해준다지만, 예산 처리가 늦어져 언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아이 병원비며 재활치료비로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은데 장애가 있는 아이를 혼자 두고 맞벌이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 박씨는 "저마다 국민, 국민을 외치지만, 여의도에서 말하는 국민에 나는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서민들의 아우성에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난감하기만 하다. 입법부가 손을 놓고 있으니 서민을 지원할 복지 예산을 전할 방법이 없다. 재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국회가 상습적으로 예산 처리를 미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으레 법정기한을 넘기고 예산이 처리될 상황을 가정한 뒤 통과되자 마자 집행될 수 있도록 비상 대응 체계를 가동한다"면서 "행정부가 국회 처리 일정에 맞춰 소위 에프엠 방식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그 때문에 서민들에게 예산이 늦게 지원되거나 지자체가 혼란에 빠지는 상황이 와봐야 정치인들도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꼬집었다. 여야는 법정 처리기한을 18일이나 넘긴 20일 쯤에야 예산안 심사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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