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과 그의 그림. 그는 인도의 신적인 존재들을 여성 누드화로 표현하면서 인도의 피카소로 칭송받게 됐다.

후세인과 그의 그림. 그는 인도의 신적인 존재들을 여성 누드화로 표현하면서 인도의 피카소로 칭송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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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윤미 기자] 인도의 피카소로 칭송 받아온 마크불 피다 후세인(M. F. Husain)이 9일 오전 타계했다. 향년 95세.


후세인은 힌두교의 신적인 존재를 여성 누드화로 형상화하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1915년 인도 마하라슈트라주에서 태어난 후세인은 뭄바이 학교를 졸업하고 , 발리우드의 영화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1947년 진보적인 예술가 프란시스 뉴튼 수자에 의해 이끌려 전위파 현대미술가가 됐다.


그는 전통 미술의 틀을 깨고 인도 대륙의 현실성을 탐구하기 위해 현대적인 비쥬얼 언어를 사용했다. 특히 힌두교의 신들을 발리우드 주인공들처럼 관능적이고 화려하게 그려냈다. 대담하고 현란한 색 표현이 특징이다.

그의 그림값은 지난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전 인도시장에서 160만~200만 달러에 팔릴 만큼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는 우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기도 했다. 특히 여성 누드화를 그린 탓에 우파로부터 살해협박을 못이겨 2006년 망명해 카타르, 런던에서 생활했다.


힌두교 신들은 1970년대 대부분 그려졌으나 1990년대 힌두교의 민족주의자들인 인도인민당의 정치적 지배력이 커지면서 후세인의 그림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면서 그의 대한 압박은 시작됐다.


후세인은 2006년 인도의 지도 모양을 여성누드화로 표현하면서 집중타를 맞았다. 인도 우파는 '인도의 엄마'의 이미지를 누드로 표현해 공개적으로 망신을 초래했다며 맹비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0일자 부고에서 "많은 화가들은 인도 우파의 이런 지적과 비난을 피해 인도의 관용과 세속주의가 전통을 침해하는 표현의 자유를 버리기 일쑤였다"면서 "2010년 인도 화가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조국을 등지고 카타르 등으로 망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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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은 지난해 인도 TV인터뷰에서 "40세가 되면서 나는 표현의 자유를 방해하는 인도 우파들과 필사적으로 싸우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의 나이가 되서는 나는 나의 일에 집중하고 싶으며 어떤 방해도 받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햇다.


또 그는 "창조적 직업인 예술가는 정치적 문제로 틀에 잡히지 말고 전 세계를 상대로 꿈꿔야 한다"면서 "나는 확신과 열정만 있다면 반드시 해냈다"고 말했다.


조윤미 기자 bong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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