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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 논란, 혹시 놓친 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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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재판이나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법으로 퇴임 관료의 취업을 제한하는 건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해요. 수 십년 공직생활로 얻은 값진 노하우를 사장(死藏)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A씨는 요사이 전관예우 논란에 마음이 착잡하다. 퇴임 관료의 재취업 자체를 범죄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7조원에 이르는 불법 대출과 분식 회계가 드러난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금융감독원 등 힘있는 기관 출신 전직 관료들이 구린 일의 '방패' 노릇을 해온 사실이 드러나서다. 전관예우 논란도 한층 뜨거워졌다. 정부와 국회가 퇴임 관료의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며 앞다퉈 나서는 이유다.

3일 '공정사회 추진회의'도 같은 선상에서 마련된 자리다. 회의에선 퇴임 관료들의 취업 제한 기간을 늘리고, 현직과의 접촉을 제한하며, 대형 법무·회계법인행에 제동을 거는 방안이 확정될 전망이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대폭 강화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판, 더해지는 제한 속에 혹시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
먼저 생각해봐야 할 건 '전공을 살린 인생 2모작'을 모두 전관예우로 몰아가는 게 타당한가 하는 점이다. '혹시나' 하는 가능성 때문에 도덕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퇴임 관료 모두에게 족쇄를 채워야 할까.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정신과도 충돌한다.

윤증현 前기획재정부 장관도 퇴임하며 "전관예우를 받을 생각도, 로펌에 갈 생각도 없지만, (퇴임 관료의 재취업을 엄격히 제한하는 건)직업 선택의 자유와 배치되니 잘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아울러 퇴임 관료를 '나랏돈으로 키운 인적 재산'으로 본다면, 이들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지 못하게 막는 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 될 수도 있다.

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Y씨는 "해당 분야 업무를 가장 잘 아는 고급 인력을 부당한 일에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취업하지 못하게 하는 건, 악플이 달릴 수 있으니 인터넷 댓글 기능을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또 다른 퇴임 관료 L씨는 "삼성그룹 등 대기업 출신 임원들이 중소기업으로 이적해 경영 노하우를 전하는 건 괜찮고, 퇴임한 고위 관료가 민간 기업에 노하우를 전하는 건 막아야 한다는 발상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나아가 인간관계를 법으로 막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함께 일했던 동료를 법으로 못 만나게 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냐는 얘기다.

중앙부처의 1급 관료 J씨는 "국제 협상이나 타부처와 조율이 필요한 일에 퇴임한 선배들의 노하우가 든든한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담그지 못하게 하는 건 실익보다 손실이 큰 일"이라고 혀를 찼다.

관가에선 이런 점을 들어 전관에 대한 취업 제한과 로비스트 법제화 문제를 분리해 접근해보자고 제안한다. 모든 퇴임 관료를 예비 범죄자로 몰아가는 대신에 로비스트가 활동할 수 있는 '양지(陽地))'를 마련해주자는 절충안이다.

17대 국회에선 관련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이승희 의원과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은 각각 '로비활동 공개 및 로비스트 등록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해 공론화를 시도했다. 전관예우에 따른 폐해를 막으려면, 건전하고 투명한 로비 활동을 장려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취지였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도 같은 취지로 '외국 대리인 로비활동 공개법안'을 발의한 일이 있다.

2006년에는 정부가 로비스트 법제화를 시도한 사례도 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당시 법조브로커 윤상림ㆍ김홍수 사건, 금융 로비스트 김재록 사건,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의 부적절한 인허가 과정 등을 들어 로비스트 양성화를 검토했다.

이런 시도는 결국 시민단체와 법조계 등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지만, 반복되는 전관예우 논란, 소모되는 사회적 에너지를 생각하면 이젠 생산적인 해법을 찾을 때도 됐다. 한 퇴임 관료의 말처럼 구더기 피하려고 장 담기를 포기할 게 아니라, 구더기만 골라낼 수 있는 시스템을 함께 고민해봐야 할 때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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