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부산저축은행 비리 의혹 사건 재판이 '변호사 수난의 장'으로 변해버렸다. 부산저축은행 박연호 회장 등 주요 임원들 변호에 나선 대형 법무법인 '바른'이 피해자들의 항의를 못 이기고 변호를 포기하면서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변호인이, 그것도 대형 로펌이 백기를 드는 건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현 정권과 인연이 깊은 변호사가 대거 포진된 법무법인 '바른'이 정치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염기창 부장판사)는 26일 오후 이번 사건의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법정에는 부산에서 상경한 피해자 약 50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재판부가 심리에 앞서 출석 여부를 확인하려 변호인 이름을 확인하자 방청석에서 "돈이 그렇게 좋으냐"는 등의 성토와 야유가 잇따랐다.

비난은 박 회장과 김양 부회장, 김민영 대표, 강성우 감사 등 부산저축은행 핵심 임원들의 변호를 맡은 '바른'으로 집중됐다. 피해자들은 심리가 끝나자 항의를 위해 서울 강남구에 있는 바른 입주건물로 진입을 시도했고, 경찰 1개 중대 병력이 약 3시간 동안 이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피해자 측과 바른 측의 면담이 이뤄졌고, 법무법인 '바른'의 권영섭 인사담당 국장이 사건에서 손을 떼기로 한 뒤 법원에 사임계를 내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공판기일이 아닌 공판준비기일 단계에서 변호인이 사건을 포기하고 사임계를 내는 건 매우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이를 두고 서울 서초구에서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변호사는 "변호사가 사건을 맡는 데는 그 어떤 조건도, 단서도, 거리낌도 있어선 안 된다"면서 "변호사가 사건을 포기해버리는 선례가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사임계가 제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초동 법조타운에서는 '바른'이 정치적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사건에서 황급히 손을 뗐을 것이란 관측이 흘러 나왔다. 피해자들의 원성을 의식했다는 해명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엄벌'을 주문한 사건에서 '엄벌 대상'인 피고인 변호를 이 대통령 및 현 정부와 인연이 깊은 변호사가 다수 배치된 '바른'이 맡는 데는 무리가 따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바른'의 대표변호사 중 한 명인 강훈 변호사는 2008년 청와대에서 법무비서관으로 일한 이 대통령의 측근이다. 강 변호사는 2008년 8월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정지 신청 사건에서 이 대통령 측 변호를 맡았다. 비슷한 시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일하며 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정동기 변호사도 '바른'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도 구성원 변호사로 '바른'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으며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역시 '바른'의 구성원 변호사다. 이런 까닭에 법조계 안팎에선 '바른'이 현 정부 주요 인사들의 최종 목적지로 여겨진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수사 선상에 오른 은진수 감사위원 또한 감사원을 나오면 바른으로 갈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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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과 함께 강성우 감사 등 부산저축은행 일부 임원의 변호에 나선 또다른 대형 법무법인 '화우'는 피해자들의 비난 및 항의가 계속될 것이 예상됨에도 원칙대로 변호를 지속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우'에는 김대중 정부 때 외교통상부 대외경제통상대사를 지낸 윤호일 대표변호사, 노무현 정부 때 대검 중수부장 및 차장, 서울고검 검사장 등으로 일한 김종빈 고문변호사 등이 포진해 있다. 강보현 대표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절친한 친구 사이로 유명하다. '화우'는 참여정부 시절 정부 소송사건을 상당수 대리하면서 성장세를 탄 바 있다.


한편, 이날 공판준비기일에서 박연호 회장은 7조원대 비리 의혹 가운데 약 44억원을 횡령한 혐의만을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 대부분을 부인했다. 피해자들은 심리가 본격 시작되기에 앞서 박 회장 등이 법정에 들어서자 "얼굴 좀 보자", "내 돈 내놓아라" 등의 막말을 쏟아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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