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상일 논설위원]


[이상일칼럼]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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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좋은 일에도 우쭐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어려운 일에도 절망하지 말라는 금언(金言)인 이 말을 요즘 되뇌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부실 저축은행의 감사나 사외이사로 소리 소문 없이 월급을 받아온 전직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국세청과 금융감독원 출신 등 백 있는 사람들은 빨리 요즘의 불편한 국면이 지나가길 바랄 것이다. 로펌의 고문으로 내려가 있는 전직 관료들도 역시 이 말을 되뇌리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관료들의 전관예우를 매도하는 분위기 역시 또한 지나가리라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얼마 지나면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또 다른 화제와 또 다른 이슈가 지금의 이슈들을 덮어버려 사람들의 관심과 기억에서 멀어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동반성장과 관련해 "중소기업인들은 정권이 바뀌면 대기업의 태도가 바뀔 것을 걱정한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인들의 우려도 무리는 아니다. 수십년 동안 3대로 내려오면서 힘이 커진 재벌이 임기 말에 힘이 빠지면서 여당 내에서조차 반기를 드는 정치권력의 말 한마디에 바뀔까. 지금은 정부 위세에 눌려 대기업이 변화의 시늉을 보이지만 이것 또한 지나가는 제스처로 비칠 것이다.


왜 그런가. 이명박 대통령부터 말이 앞서거나 아니면 말로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기름값을 '묘하다'고 언급하고 장관이 '회계 장부까지 뒤져 보겠다'고 말했다. 결국 큰 효과를 못 보고 스타일만 구긴 양상이다. '이익공유제' 등 말잔치만 벌이는 모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대 출신, 재벌을 공격했다. 말이 앞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환멸감에 반사적 이익으로 집권한 이 대통령은 요즘 노 전 대통령과 갈수록 비슷해지는 모습이다. 재벌을 공격하고 며칠 전에는 서울대 출신이 관료사회에 너무 많다고 공격했다. 그렇게 말로 한다해서 뭐가 바뀌는지 의문이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은 몇 가지 핵심 관심사를 대못으로 질러 박을 줄 알았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07년 9월 시행한 분양가상한제다. 한나라당 장광근 의원은 이것이야말로 정말 큰 대못이라고 지적했다. 탄력성을 가진 시행령으로 해도 충분한데 강력한 의지를 보이려고 노 정권은 법률 개정안으로 명문화했다는 것이다. 몇 년이 지나 '악법'으로 비난받고 있지만 정책 의지를 강하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이제 여당은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 분양가상한제를 손대고 싶어 해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치기가 부담스럽다. 자칫 부동산 가격에 불을 붙인다는 비난을 받을까 우려해서다.


과연 이 정권에서는 핵심가치로 수호하는 정책이 있기나 하며, 이를 법제화할 만큼 강력한 것이 있던가. 뚜렷하게 각인된 것이 별로 없다. 그나마 판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받는 전관예우를 1년간 금지하고 저축은행의 낙하산 사외이사를 법으로 금지키로 했다는 정도다. 다른 금융권이나 공기업 낙하산 문제는 말로만 비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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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기업 총수의 문화를 비판하고 기업 간부들을 '관료적'이라 공격해 일시적으로 재계에 긴장감을 주었다. 그것으로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문화란 쉽게 바뀌기 어렵다. 칼 같은 실적 평가에 길들여진 기업 간부가 눈앞의 이익을 외면할 리도 없다. 대기업을 변화시킨다고 하면서 무엇 하나 구체적인 법으로 만들 의지가 없는 게 이 정부의 한계다.


그런가 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금 갖고 있는 칼도 제대로 쓰지 않는다. 제도를 고치지도 않고 녹슬어가는 칼은 내팽겨둔 채 말만 앞세우니 뭔가 바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국민들은 '이것 또한 지나가는' 정치적 쇼처럼 간주하게 되는 것이다. bruce@


이상일 논설위원 bru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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