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이냐 '교양'이냐.. 갈림길에 선 대학
[아시아경제 김도형 기자]중앙대의 길이냐 경희대의 길이냐. 대학들이 갈림길에 섰다. '실용'을 외치는 중앙대의 개혁 모델과 '교양'을 내세운 경희대의 고전 모형이 그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학생들을 길러내는 방식도 오랜 고민 끝에 대학들은 서로 다른 모형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앙대의 개혁은 지난 2008년에 이미 시작됐다. 슬로건은 간단하다. 실제로 쓸모있는 학문을 가르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중앙대는 우선 '학과'를 다시 배치했다.
기존의 18개 단과 대학, 77개 학과를 10개 대학, 47개 학과로 개편했다. 수요가 줄었다고 판단된 외국어 대학의 독어학과, 불어학과를 유럽문화학부로 통합하는 대신 사회의 요구가 늘어난 학과를 신설했다. 경영학부(글로벌금융), 융합공학부와 국제 물류학과를 새로 만들고 4년 장학금, 해외연수 기회, 기숙사 우선 제공 등의 혜택을 내걸었다.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회계와 사회'를 공부한다. 기초회계는 졸업후 사회와 기업에서는 '상식'이라는 판단에서다.
학생들은 또 '진로탐색과 자기계발' 과목을 통해 취업 준비에 모든 것을 건다. 전국 181개 대학 가운데 174위를 기록할 정도로 '짠' 평균 학점을 통해 공부하는 대학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앙대는 10개 단과대학을 5개 개열로 나누고 5명의 책임부총장제를 통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교수와 직원들에 대한 평가 역시 강화해 S, A, B, C 등급의 평가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용성 중앙대 재단이사장은 "기업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판매되듯 대학도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앙대 최승식 학생(경영경제계열 1학년)은 "회계학 수업의 경우 선배들도 잘 들어두라고 많이 조언한다"며 "세무회계 쪽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학원에 가서라도 배우려는 경우가 있는데 학교에서 수업이 열리니까 편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교양교육을 통해 기본과 인성을 갖춘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그것이다. 경희대는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교육'을 내세운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중핵교과(6학점), 배분이수교과(15학점 이상), 기초필수와 시민교육(11학점) 등 총 35학점의 교양강좌를 후마니타스 칼리지에서 이수해야 한다. 이번 학기에 개설된 중핵교과는 '인간의 가치 탐색'이다. 5000명에 가까운 경희대 신입생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수업을 들어야 한다. 53명의 교수가 투입되고 800쪽에 이르는 교재가 새로 만들어졌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떻게 고르지 못한 세상에 대응할 것인가?' 등 7개의 장으로 이뤄진 교재에는 맹자, 사마천, 정약용, 법정, 조영래, 플라톤, 프로이트, 뤽 페리, 칼 세이건, 스티브 잡스 등 시대와 분야를 뛰어넘는 인물 100명 가량의 글이 실렸다.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이끌고 있는 도정일 대학장은 "폭 넓게 좌우를 살피면서 나 자신을 어떻게 세우고 사회에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고민하는 학생을 길러내겠다"며 "취업이 중요해질수록 기본적인 가치교육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내면을 채운 인재를 길러내는 것은 조금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이 도 대학장의 판단이다. 경희대 최성호 학생(경영학과 1학년)은 "중핵교과의 경우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로 난이도가 있지만 내용이 탄탄하고 그 취지에도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들 대학의 '선택'은 다른 학교에도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희대 관계자는 "소규모로 내실 있게 운영 중인 대학들 가운데 인문ㆍ교양 교육에 관심을 보이는 대학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한신대, 한림대, 군산대 등은 실제로 경희대의 후마니타스 칼리지 운영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의 개혁모델은 여러 해 동안 대학가의 관심사였다. 교직원에 대한 평가는 이미 많은 대학들이 도입했다. 또 한양대는 예산ㆍ인사권을 단과대 학장에게 주는 '단과대 책임경영제'를 시행하기로 했고, 건국대 역시 개혁을 추진하면서 상관도가 높은 대학과 학과(전공)를 계열별로 묶어 해당 계열부총장 산하에 두는 '계열별 부총장제'를 도입한다.
공인영어성적과 자격증 등을 졸업요건으로 제시하면서 학생들의 취업 역량을 강화하는 방법은 거의 모든 대학에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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