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잘 몰랐기에..고객 입장에서 바꿨다
-신용보증에도 경쟁개념 도입
-中企 '온라인 대출장터' 성공
-보수적 사내 문화까지 대수술
[아시아경제 김은별 기자] "잘 몰랐기 때문에 더 많이 바꿀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금융계나 기획재정부에 있었더라면 못 했을 서비스를 여러 개 '신장개업' 해서 성공시켰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왔으니, 고객 입장에서 바꾸려고 노력한 것이지요."
'낙하산 인사' 논란 속에 지난 2008년 7월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안택수 이사장. 당시 그는 "국회 재경위에서 재정경제부는 물론 한국은행,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에 대해 7년간 국정감사 등을 통해 정책질의를 하면서 매년 서너차례 신보의 현안을 들여다봤다. 재경부 출신도 조세ㆍ세제ㆍ국제금융 쪽에서 일한 분들은 신보의 신자도 모른다"고 반박해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이 크게 틀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재임기간에 보증여력이 1.5배 늘어났다. 신용보증 업무에 경쟁 개념을 도입해 '중소기업=을, 은행=갑'의 구도를 '중소기업=갑, 은행=을'로 역전시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부의 공공기관평가에서는 2년 연속 A등급을 받았고 기획재정부가 실시하는 고객만족도 조사에서도 최고 등급을 받았다. 역동적인 언론과 정치를 거쳐 보수적인 금융 CEO로 보낸 그의 지난 3년이 궁금했다. 특히 고집스러울 정도로 보수적이란 신보에 '변화'와 '창의'의 숨결을 불어넣은 그의 노하우가 뭔지 묻고 싶었다.
<대담=박종인 경제담당 부국장 겸 금융부장>
-3년이 금방 가버렸습니다.
▲지내고 보니까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려왔네요. 취임직후부터 몰아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몰두하다 보니까,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와버렸습니다. (취임 직후인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경제위기는 정점에 달했고, 그 여파로 국내 중소기업들도 극심한 경영난에 처해 신보의 역할이 커졌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위기 경험이 앞으로 또다른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좋은 경험이었죠. 저보다는 2200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금융위기 극복의 전사로 나서 평일에도 밤 10~11시까지, 토요일에도 근무했습니다. 그렇게 부단한 노력을 했기에 위기라는 큰 불을 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년의 신규 보증규모 순증액이 약 8조원 정도인데, 2009년에는 17조7000억원을 신규 지원했습니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이죠. 산술적으로 직원들이 두 배 이상 일을 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보람도 있으셨겠네요.
▲중소기업 운영하는 분들은 잘 아는데, 아직 일반 국민들에게는 친근하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구석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도 국민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중소기업에 금융지원을 하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보람은 큽니다. 경제가 힘들어지면 시중은행들은 리스크관리 운운하며 중소기업 대출을 꺼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보증기관이 나서야 합니다. 현재 은행대출을 이용하는 중소기업의 87% 정도가 신보 등의 보증부 대출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니 금융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이라 할 만 하지요.
-국회의원과 금융 CEO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국회의원은 입법활동도 하고 정부 부처와 공기업의 일을 들여다 보기도 하지만 직접 하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구경꾼인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직접 일을 맡아 책임지고 평가받고 하니까 일한다는 실감이 납니다.
-신보에서 가장 잘 한 일 두가지를 꼽는다면
▲보증업무에 경쟁을 도입 '온라인 대출장터'라는 제도를 도입한 것과 기업의 미래가치를 평가에 반영한 것입니다. 과거 은행에서 금리를 정해주면 중소기업들이 신보에서 보증서를 발급받는 구조였는데, 온라인 대출장터를 통해 그 구조를 확 뒤집었습니다. 신보가 기업현황과 보증서 발급 사실을 온라인에 띄우면, 그걸 보고 은행들이 금리를 제시합니다. 중소기업들로선 가장 싼 금리를 제시하는 은행에서 대출받게 됩니다. 미래가치를 평가에 반영한 건 순전히 제 아이디어입니다. 처음 신보에 와서 그동안 단 한 번도 평가방법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좀 바꿔보면 어떻겠냐고 제가 제안한 것입니다. 1억원 미만 보증일 경우 최근 매출 1년간을 보고, 1억~10억원 사이는 성장성을, 10억 이상 보증일 경우 미래가치를 포함해 평가합니다. 신보가 미래 성장성을 따지자 기보도 이 평가모델을 도입했습니다.
-신용보증 제도를 해외에 수출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베트남을 비롯해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많은 신흥개발국에서 보증제도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그만큼 우리의 보증제도가 좋다는 의미입니다. 얼마전에는 터키 신보 회장과 보증제도 전수를 위한 MOU도 체결했습니다.
-내년 총선이 4월입니다. 따로 계획은 있으십니까
▲지금 이모저모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하는 것이 좋은건지 안하는 것이 좋은건지.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은 건지 궁리중입니다.
-보통 출마하실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물론 지역구에서는 출마를 바란다면서 전화도 많이 옵니다. 제 신보 임기가 7월 중순에 끝나니까요. 저도 아직은 젊은 편이니까 마음은 아직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도 그런대로 괜찮고요, 좀 더 일을 더 해야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安이사장 3년 - 보증액 늘어나고..부실률 감소 >
오는 7월 임기가 끝나는 안택수 이사장의 '금융CEO 3년 성적표'에는 어떤 점수들이 담겨 있을까. 양적 보증확대ㆍ부실률ㆍ구상권 회수 등 보증기관의 '필수과목' 점수를 통해 그의 성적표를 예측해봤다.
그는 취임 당시 기존의 보증축소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증총량을 신축적으로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에는 보증공급을 늘려 중소기업 자금난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보증잔액이다. 재임 전년인 2007년말 28조5000억원에 그쳤던 일반보증 잔액이 2008년 30조4000억원, 2009년 39조2000억원, 지난해 말에는 38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그간의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A+를 줘도 좋은 성적이라는 게 신보 안팎의 평가다.
보증을 늘리면서 신보가 가장 우려했던 건 부실률 증가다. 안 이사장이 가장 노심초사한 대목이다. 이사장이 앞장서서 평가에 기업의 미래성장을 반영토록 하고, 직원들에게 융통성을 강조해 보증을 늘렸는데 그 결과가 '부실률 상승'이란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경우 그간의 노력이 허사가 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9년 부실률은 4.4%로 평년(5.0%) 보다 낮게 나타났다. 지난해에도 4.7%에 그쳤다. 보증은 늘렸는데 부실은 줄어든 것. 안 이사장은 "선제적이고 과감하게 미래가치를 평가한 것이 오히려 득이 된 것 같다"며 "경기회복이 빨랐던 것도 부실률을 낮추는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신보가 대신 변제했던 구상권을 되돌려받은, 즉 구상권 회수 실적도 중요한 평가지표다. 신보는 최근 2년 연속 사상 최대의 구상권 회수실적을 기록했다. 2008년에는 5920억원에 그쳤던 구상권 회수실적이 2009년에는 7109억원, 2010년에는 7706억원까지 늘었다. 이같은 구상권 회수를 통해 신보는 약 9조2000억원의 보증지원 여력을 확보했다.(적정 운용배수 12배를 감안한 수치다)
안 이사장이 '신장개업'한 서비스도 좋은 기록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초로 도입된 온라인 대출거래 사이트인 '중소기업 온라인 대출장터'는 오픈 2개월이 조금 넘은 현재 총 3095건(3154억원)의 실적을 거뒀다. 올 1월 보험보장 기능과 대출담보 기능을 결합해 내놓은 '일석e조보험'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4월15일 기준 총 223건의 실적을 올렸으며, 이중 대출실행 금액은 476억원에 달한다.
< 安이사장은 - 기자..정치인..금융CEO >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언론인으로 시작해 3선 의원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1943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일보에서 편집국 정치부기자, 사회부 차장 등을 거쳤으며 한국 기자협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1982년부터 1987년까지는 보건사회부 대변인을 지냈고, 이후 국민연금관리공단 재정이사로 공직사회를 경험했다.
1996년 15대 국회(대구 북을)에 입성했으며 15대 대선 직전 'DJP 단일화'에 반대하며 한나라당으로 옮겨 16 ㆍ17대 국회의원에 연속 당선됐다.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대변인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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