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각료 불도저행진 도 넘었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 '정유사 성의표시' 발언 파문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자료를 제출했다고 하지만 안한거나 마찬가지다. 가슴 아프다는데 머리나 발은 괜찮다고 하는데 이러면 얘기가 안된다. 낸 자료로는 도저히 판단하기 어렵다. (중략) 이 시장은 과점상태인데 정부가 뭐라 하는 걸 반시장적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전력, 설탕업계를 예로 들며) 옆에 있는 것을 봐라. 성의표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숫자 안에서 빙빙 돌아야 답이 안나온다. 정서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정유사가 과점 상태인데 정부가 정보를 보겠다는 것 자체를 안된다고 해서야 되겠냐. 그걸 여자 치마속 들춰보는 걸로 얘기하는데 그게 아니다. 이 시장은 대표적인 정보비대칭 시장이다"
23일 한 언론사 주최 포럼에서 "정유사가 성의표시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발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성의표시를 않고 있는' 정유업계는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차 도(道)가 지나쳤다는 지적이다.
최 장관은 이날 한국전력과 제당업계를 예로 들며 "이들이 적자를 보는 데도 정부에 협조하는 데(가격 동결 혹은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을 의미) 국민 복리를 위한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했다. 최 장관은 이어 화살을 정유사로 돌렸다. 최 장관은 "가슴이 아프다는데 머리와 발은 괜찮다고 하고 있다. 이걸로는 도저히 판단을 할 수 없다" 고 했다.
지경부 주도로 관계부처와 정유사가 참여하는 석유가격 인하를 위한 태스크포스(석유TF)에서 정유사에 원가자료를 요청했는데 정유사가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석유TF는 지난 1월 13일 이명박 대통령이 "기름값이 묘하다"고 말한 이후 민관합동으로 가동됐으며 석유제품 시장구조의 분석과 가격비대칭성(국제유가와 국내 휘발유가격의 상관관계)의 문제를 뜯어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TF를 통해 석유가격 인하를 담은 종합대책을 내놓기로 했으나 예정시한을 당초 2월말을 한달이나 넘기면서도 구체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최 장관은 이것이 정유사의 불성실한 태도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최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서는 자신이 회계사출신(서울대 경영학과 졸업)임을 강조하면서 "정유사의 영업이익률 3%는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직접 석유제품 원가를 계산해보겠다"고도 했다. 이어 지난 17일에는 강원도 탄광을 방문해서는 "유가 구조를 분석하려고 정유사들에 원가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자료가 충분치 않았다"면서 "SK이노베이션을 제외하면, 다른 정유사들은 자료를 (제대로) 내지도 않았다. 정부가 자료를 요구했는데 제출하지 않으면 잘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거듭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최 장관의 전날 발언이 다분히 정치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다른 업종과 달리 유독 정유업계가 정부에 단단히 밉보였다는 후문이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동반성장을 추진하면서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휴대폰 유통 등 11개 업종에서 동반성장 협약을 체결하고 세부 이행에 들어갔지만 정유는 4개사 과점형태에 대기업-협력사 구조가 아닌 공급과 수요구조여서 제외된 상태"라면서 "최종수요자가 소비자이고 유가와 휘발유가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한 상황에서 타 업종에 비해 협조의지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했다.
이에 앞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예정에 없이 서초동의 셀프주유소를 방문해 "주유소들은 소비자들에게 가격이 공개돼 투명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유사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기름 유통과정에) 확실히 독과점에 따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시장의 지배적 견해로, 정부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이미 공정위를 공정거래가 아닌 물가관리기관으로 바꾼 데다 5월 중 정유사 불공정행위를 발표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대통령에서부터 경제부처 수장들이 특정업종, 특정기업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압박하는 것은 과거 정부주도 개발독재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석유전문가는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정부가 거시적, 미시적 정책을 합친 정책조합을 통해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고 업계와 국민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면서 "세수감소와 효과가 의문시 된다는 핑계로 유류세나 석유제품에 대한 관세인하 등에 적극 나서야 하는데 이는 하지 않고 기업들에 성의표시를 하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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