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시설에서 발생하는 사건에도 일반 국민이나 언론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국제적 사건등급이 도입돼있다. IAEA에서 도입한 '국제 원자력 사고·고장등급(INES)'이다. INES는 1992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60여개국이 이 체계로 원자력 사건 등급을 평가한다.
사고의 첫단계인 4등급은 1밀리시버트 이상 피폭이 발생하고 원자로 노심이 상당수준 손상했을 경우를 가리킨다. 최악의 사태인 7등급은 방사성 물질이 수만 테라베크렐(방사성물질량 단위) 방출됐을 경우다.
역사상 가장 큰 원전사고로 기록된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7등급으로 분류된다. 1986년 4월 26일 터진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안전시험 중 직원이 부주의로 안전장치를 해제한 것이 원인이었다. 원자로 출력이 갑자기 올라가 고온 증기가 발생했고 이는 폭발로 이어졌다. 대량 방출된 제논가스와 요오드,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은 바람을 타고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스칸디나비아와 유럽까지 퍼졌다.
1979년 3월 28일 일어난 미국 펜실베니아주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사고는 5단계에 속한다. 발단은 근무중이던 운전원이 냉각재 부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발전 설비에 기계적 이상이 있던 것도 문제였다. 이는 결국 핵연료 노심이 거의 다 녹아내리는 대형 사고로 번졌다. 사고 크기에 비해 피폭량은 0.015밀리시버트로 일상 생활에서 겪게 되는 피폭량 1.25밀리시버트에 비해 매우 작은 수준이었지만, 상당수의 주민들이 사고 직후 정신과를 찾는 등 '악몽'으로 기억됐다. 피해 영향에 대한 역학 조사는 아직도 계속 추진중이다.
이로 인해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은 영구 폐쇄됐고 오염물질을 정화, 복구하는 데만 10억달러 가까운 비용이 들어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스리마일 아일랜드 원전 사고를 뛰어넘을지도 모른다고 우려되는 부분은 피폭량이다. 원전 내진설계 전문가인 조양희 지진공학회 회장은 "스리마일 아일랜드 사고의 경우 노심이 거의 용융됐는데도 불구하고 원자로 외벽이나 격납용기 손상이 없어 피해가 적었다"고 말했다. 반면 후쿠시마 원전은 외벽이 폭발하고 격납용기 시설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나며 피폭량이 늘어났다. 15일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부근에서는 피폭량이 400밀리시버트에 달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규모가 몇 등급으로 평가될지도 관심사다. 13일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는 사고 등급을 시설 내부에 위험이 발생했음을 가리키는 4단계로 발표했다. 이것만으로도 1992년 등급 도입 이후 최대 사고다. INES 국가통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각국에서 보고된 원자력 사고 중 '고장'인 3단계 이상은 없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사고가 더욱 심각할 것으로 보고 있다. 16일 프랑스 원자력안전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6등급에 속한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청장인 앙드레 클로드 라코스테(Andre-Claude Lacoste)는 이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명백한 6등급"이라며 "재앙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한편 로이터 통신은 미국 싱크탱크 등에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며 "7등급까지 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수진 기자 s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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