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돈大學에 묻는다, 교육을 팔아치웠는가
[아시아경제 황석연 기자] 대학 주식회사/ 제니퍼 워시번/후마니타스/1만8000원
김영길 한동대 총장이 지난 2일 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한 말이 있다. "대학이 연구중심에 치우쳐 교육 본연의 기능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니 했다. 지식정보화 사회를 이끌어가려면 대학의 연구개발(R&D) 기능이 더욱 강화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에 김 총장의 발언은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손에 쥐고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이 책의 8장에는 '상업화된 대학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란 소제목 아래 미국에서 교육과 인문학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저자인 워시번의 분석에 따르면 등록금 인상과 시간강사의 증가, 인문학의 몰락은 상업성 있는 실험실로 기업과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면서 대학 스스로 공적 임무를 망각한 데 따른 결과라는 것이다. 첨단 장비를 갖춘 실험실에는 수백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종신직 교수나 전임 교수를 시간강사나 대학원생으로 대체하고 있는 대학. 컴퓨터 공학이나 경제학 등을 전공하는 스타 교수들은 수십만달러의 연봉을 주고 강의는 최소한만 하는 조건으로 채용하면서 대학 교육과정의 중심이 돼야 할 인문학 수업은 커다란 강당에서 수백명의 학생이 듣고 학생 개인 지도는 전적으로 조교들이 담당하도록 하는 대학. 이런 풍경들의 묘사를 통해 상업화에 찌든 대학의 현실을 꼬집는다.
고개를 끄덕일 즈음. 미국 대학의 현실이 요즘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대목을 만나게 된다. 2002년 뉴욕 대학은 연봉이 1인당 20~30만달러에 달하는 유명 경제학자 8명을 채용했는데 이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라 신문지면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1년 후 뉴욕대학은 하버드 대학의 안드레이 슐레이퍼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 50만달러의 연봉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뉴욕대에 입학한 학생들은 이런 스타급 교수에게 배울 일은 거의 없다. 뉴욕 대학은 이 거물급 학자들을 영입하면서 강의는 최소한으로 줄여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대신 대학원생이나 시간 강사에게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2001년 미국 교육부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진 가운데 44.5%가 비정규직이라고 한다.
대학의 시장논리는 학생들에 대한 학자금 지원 양상도 바꾸어 놓았다. 최근 대학들은 학비 지원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수여하는 성적장학금으로 바꾸고 있다. 지난 10년간 물가 상승을 반영한 등록금은 4년제 사립대가 평균 37%, 4년제 공립대가 평균 54% 인상됐고 이렇게 인상된 등록금을 대기 위해 학생들은 더욱 많은 대출을 받아야 했다. 1993년에 9250달러였던 졸업생의 평균 대출액은 2004년에 1만9200달러로 늘었다. 2010년 현재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이쯤되면 한 해 1000만원이나 한다는 비싼 대학등록금을 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선망하는 하버드, 스탠퍼드, 버클리대학의 현실이 이런 정도라면 차라리 대학문을 박차고 나오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대학문을 박차고 나왔듯이 말이다.
처음 '대학 주식회사'라는 이름을 접하면서 '삐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이 시장(市場)은 분명 아닐텐 데 뭇매를 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을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지게 된다. '상업화에 맞서 대학을 보호하는 법'이란 글을 통해 저자는 "대학 교육의 상업화는 대학을 그 전통적인 역할에서 멀어지게 해 장기적으로 대학이 성장하는 데 해가 될 수 있다"며 "대학이 자신의 존립 근거를 시장의 용어로 정당화하면서 되파는 데만 신경을 쓴다면 공적 지원을 받을 만한 근거는 점점 더 희박해질 것"이라고 애정어린 충고를 잊지 않는다. 그는 또 "지식기반 경제에서는 편협한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것보다 읽기, 쓰기, 수학, 과학 등에 걸친 폭넓은 기반, 즉 학생들의 지적 능력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연마시키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며 "거의 모든 지식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대학이 전해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기술은 평생에 걸쳐 지적 성장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지금 당장 대학이 민간 기업과의 관계를 끊고 상아탑 안에 틀어박히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결론에서 이야기하듯, 대학은 외부 세계와 연관을 맺으면서 창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고무하고, 기업가적 사고를 뒷받침해 주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대학이 이 모두를 해내는 데 있어서 그 자율성이나 오랜 세월 수호해 온 가치와 이상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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