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원에 잃어버린 국격
[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이상미 기자] 글로벌시대를 맞아 장단기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는 학생이 연간 10만명을 넘어선 가운데 올 겨울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떠난 한국 초등학생 113명이 현지에서 여권을 압수당하고 억류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한화로 15만원에 불과한 학업허가증(SSPㆍSpecial Study Permits)을 발급받지 않아서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14일 "필리핀 당국이 지난 7일 바탕가스 레메리 등 마닐라 인근에서 불법 어학연수를 받던 현장을 덥쳐 한국인 학생 113명의 여권을 압수했다"고 말했다. 일부 중학생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초등학생인 한국인 학생들은 14일 현재 한국인 인솔자의 보호 아래 현지 숙소에 체류하고 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필리핀 당국은 학생들 외에도 어학원 운영자 이씨 등 14명 역시 이민법 위반 혐의로 수용소에 구금했다.
어학원 운영자들은 필리핀이 무비자로 3주 체류 가능국임을 악용해 학업허가증을 발급받지 않고 지내다 현지 동업자의 제보로 필리핀 당국에 걸려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어학원 운영자들이 현지인들과 동업을 하다가 따로 유학원을 차리자 현지인 동업자들이 필리핀 당국에 고발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는 주필리핀대사관 영사를 외국인수용소에 긴급 파견해 수용자들을 면담하고, 필리핀 이민청 관계자에게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와 함께 인도적 차원에서의 처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한국인 학생 억류 사태를 계기로 현지 유학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유학생ㆍ연수생에 대한 보호를 강화할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한국의 해외 조기 유학생 수는 2000년 4397명에서 2008년 2만7349명으로 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초등학생 수는 2008년 한 해 1만2531명으로 2000년 705명의 18배에 이른다. 같은 기간 중학생은 1799명에서 8888명으로 늘었고 고등학생 유학도 1893명에서 5930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번에 초등학생들이 억류된 필리핀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비용이 저렴해 상대적으로 비용이 비싼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다녀오는 '징검다리' 로 인기를 끌어왔다. 이와 관련해 S어학원의 박모 컨설턴트는 14일"어학연수는 언어습득 뿐 아니라 생활 전반을 어떻게 지도 받는지를 따져야 한다"며 "일부 유학ㆍ어학연수 기관은 현지 업자들과 계약으로 운영되고 있어 학생들에 대한 현지 지도나 관리에 미비점이 생길 수 있다"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그는 또 필리핀 어학연수 비용은 4주간을 기준으로 230~250만원 가량(항공료 포함) 소요되는 데 ▲현지 학비와 기숙사비 ▲방과후 지도, 학습비용 ▲학업허가증 비용 ▲비자 연장비 ▲가디언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고 이 가운데 이상하게 싼 항목이 들어있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외 관련국의 법과 절차도 유심히 살펴야 한다. 이번 억류의 원인은 필리핀 이민법상 관광비자만으로는 어학연수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비롯했다. 필리핀은 어학연수를 신청한다고 학생비자를 발급해주지는 않기 때문에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곧바로 학업허가증을 신청해 연수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학원 등 현지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대신해 13~15만원 가량의 학업허가증을 발급 받아 합법 체류가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 학업허가증을 받기 위한 비용을 한국인 어학원 관계자들이 떼먹은 것인지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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