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피해만 있고 책임은 없는 '옵션만기사태'
[아시아경제 박지성 기자]국내자본시장의 입장에서 지난 11일 옵션만기 사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사건의 파장에 비해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사태의 배후를 판단하는 일은 물론 매도 주문창구 마저 명확하게 규명이 안 된 상태다. 우리 자본시장의 허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셈이다.
대책을 내 놓을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사태의 흐름은 다소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비난의 화살이 외국계 자본에 집중 돼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 농락당한 꼴이라든가 외국인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는 애국심에 호소해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이번 거래의 위반 요소는 대량매매에 대한 사전 신고 의무를 어겼다는 점 밖에 없다. 이에 대한 제제는 최대 200만원의 벌금 뿐이다. 금융당국은 주식 매도 주문과 옵션거래 연계여부에 대한 불공정 거래를 집중규명 해 불공정 거래 여부를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이것도 연계여부가 있을 시 불공정 거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일 뿐 확정된 사항은 없다.
차라리 국내 거래를 살펴보면 문제점은 더 많이 드러난다. 이번 사태로 889억원의 손실을 입어 최대 피해자로 꼽히는 와이즈에셋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하다. 손실을 안긴 사모펀드 '현대와이즈다크호스사모파생상품1호'의 설정액은 124억원으로 규정상 설정액의 5배까지 위험부담을 질 수 있게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펀드는 풋옵션 대량 법정한도의 위험을 73배 더 안음으로써 손실을 더 키웠다.
거래 창구였던 하나대투증권의 리스크관리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현재 하나대투증권은 와이즈에셋의 증거금을 제외한 옵션 거래 계약 이행금 760억원을 대납한 상태다. 하지만 와이즈에셋의 자산이 100억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회수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다. 거래고객에 대한 1차 감독에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태에 대해 리스크 관리의 허점은 있었지만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예외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얼핏 일리 있어 보이는 말이지만 규제라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예외적인 상황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한 것임을 간과한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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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태의 본질은 옵션거래에 대한 국내의 제도적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세력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국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자체의 문제다. 시장을 아는 이들이 이번 거래를 한탄하기 보다는 우리 국민연금도 역량을 키워서 외국에서 이런 차익을 챙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나라에 자본이 몰린다면 이유는 두 가지다. 차익을 챙길 허점이 있거나 돈이 제대로 돌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는 당연히 후자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편 가르기나 책임 소재가 아니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맹점을 보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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