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원의 여의도프리즘] # 수십만 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환영처럼 떠오른다. 낡은 취재수첩을 뒤적이니, 처연한 단어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지금도 영월 일원에선 하얀 말을 타고 화사한 용포에 검은 익선관을 쓴 단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억울한 죽임을 당한 지 무려 5백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슬프도록 곱게 그려진 단종의 용안은 그가 우리 땅 곳곳에서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끈질기게 이어지는 이유를 조용히 들려준다”
노무현의 죽음은 앞으로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아니,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4백년 전 이순신은 왜적 뿐 아니라 선조 임금의 집요한 의심이라는 두 전선에서 동시에 싸워야 했다. 그의 몸에 박힌 적탄은 시시각각 조여 드는 임금의 음험한 질투와 그에 덧붙여진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영웅은 마지막 전장에서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택함으로써, 조선 백성들의 안위와 자신의 이름을 동시에 구할 수 있었다”
고인은 갔으나 그의 존재는 아직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하긴 한 사람을 완전히 떠나 보내기엔 1년이란 시간은 짧을 수 있다.
“지난 88년 7월 첫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 사회는...적어도 살기가 힘이 들어서, 아니면 분하고 서러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좀 없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토로한 것도 그의 유언에 나오는 ‘운명’의 복선이었을까”
돌이켜보니, 운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가 광주의 선택을 받아 정국의 격랑을 불러일으킨 이후, 우린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 “그의 죽음은 다수의 협조자와 방관자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가 밉고 불편하고 싫었던 사람들이 ‘저주의 굿판’을 벌이고 이를 유포시켰을 때, 일반 국민들 다수도 그 증오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굿판은 아직도 ‘좌파’ 등의 꼬리표를 달고 돌림병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곤 한다.
“‘나도 공모한 것 아닌가’라는 죄책감은 역사상 최대 규모인 500만의 조문행렬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울부짖음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용서하고 구원받았다.
그의 주검 앞에 서럽게 쏟아낸 통곡과 연호, 눈물의 장송곡은 그들의 잘못을 ‘사’(赦)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그의 작은 비석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장삼이사의 순례길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구원을 받았을까.
“그 죽음의 협조, 방관자들은 이렇게 눈물로 ‘정화’(淨化)되고 있으나, ‘주범’들의 고백과 회개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고인의 유언을 감히 입에 올리며 ‘화해’라는 가당찮은 단어부터 들먹인다”
# 그의 죽음을 ‘소신공양’, 혹은 ‘순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사람들의 눈물이 그간 외면당하고 무시됐던 그의 가치와 꿈의 회복으로 이어진다면 그건 맞는 말일게다.
“부엉이는 눈과 귀가 특히 발달된 맹금류다. 둥그렇고 큰 눈을 활용, 어두운 곳에서도 대낮처럼 움직인다. 소리 없이 날도록 진화된 깃털을 이용, 표적에 살며시 접근한다”
이 땅 민초들은 시절이 어두워지면 그들의 좌절된 염원을 ‘참언’과 ‘비결’(秘訣) 에 얹어 다시 새 세상을 꿈꾸곤 했다. 그마저도 없다면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적막해진 봉화산엔 가끔 부엉이가 나타날지 모른다. 세상은 그럴 때마다 천심 혹은 민심이라고 수군거리고, 어떤 이들은 역시 역사가 무섭다고 고개를 주억거릴 것이다”
사마중달에게 제갈공명은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마지막으로 공명을 이길 수 있었던 ‘오장원 전투’, 죽은 사람에게 우롱당한 중달은 공명을 앞지를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린다.
마땅히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에게 그는 또 하나의 신화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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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국장대우 dw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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