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txt="";$size="300,162,0";$no="2010051711165118332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촛불의 이미지는 정적이다. 서양에서는 흔히 종교 의례에, 또는 망자를 추모할 때 경건하게 의식을 치르는 상징적 의미로 촛불을 밝힌다. 동양에서는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초를 희생하는 삶의 현재적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경건하고 사유적인 요소가 강하다.
우리의 경우는 좀 다르다. 우리에게 촛불은 정적인 이미지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역동적인 이미지로 변화한지 오래다. 그 것도 정치적 역동성의 상징으로. 해가 지고 난 뒤 찾아오는 자연의 어둠을 밝히는 단순한 불이 아니라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불'의 이미지로, 정치적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우리들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얘기다.
촛불이 정치적 저항 운동의 상징처럼 된 것은 2002년부터다. 그해 6월13일 경기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도화선이다. 있을 법한 일로 지나칠 수도 있던 사고였지만 미군 법정이 사고 운전병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반미(反美) 시위로 변화한 것이다. 그리고 11월30일, 한 네티즌의 제안으로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이 타기 시작했다. 촛불의 열기는 빠르게 전국으로 번졌다. 국민들에게 촛불이 정치적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첫 '사건'이었다.
그 후로 촛불은 시위나 집회 때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 이른 바 '광우병 파동'은 그 절정이었다. 그해 5월2일 청계광장에서 불붙은 촛불은 두 달여 이상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마치 이명박정부를 태워버릴 듯 강렬했다.
왼편에 선 사람들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라고 평가했고 오른편에 선 사람들은 '거짓과 광기의 폭력'이라고 했다. 둘은 그러나 한 가지 점에서만큼은 의견을 같이 했다. 촛불은 이제 그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제어할 수 없는 가공할 하나의 권력으로 화했다는 사실이다.
두 해가 지나 또다시 5월이다. 다시 촛불이 일렁일 기세다.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불을 붙인 형국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촛불시위 2년이 지나 많은 억측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는데도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촛불로 인해 나라가 한 때 두 동강이 나고 사회적 비용 손실이 3조7513억원으로 추정될 만큼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는 점을 감안할 때 광우병에 대한 진실이 상당 부분 밝혀진 지금 못할 말은 아니다. 그러나 쇠고기 수입 협정을 졸속으로 체결하고, 소통부족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는 등 촛불의 빌미를 제공한 정부의 잘못 역시 컸다는 점에서 섣불렀다.
2년전 촛불을 들었던 이들은 반발했다. 이 대통령이 당시 "부족한 점은 모두 저의 탓"이라며 두 차례나 사과를 한 것이 거짓으로 드러났다는 이유에서다. 그동안 촛불을 잊고 살았던 걸 반성한다며 다시금 촛불을 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정부도 반성할 건 반성해야 된다고 했다"고 말했지만 쉽게 진화될 기색이 아니다. 사려 깊지 못한 말 한마디가 풍파를 불러온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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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촛불의 힘을 등에 업고 촛불의 순수성을 정치적 선동으로 왜곡시킨 세력의 잘못까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나만 옳다는 오만함은 더 큰 화를 부른다. 다시 촛불을 들고자 한다면 초에 불을 붙이기 전에 잊지말아야 할 게 하나 있다. 초는 불이 타오르는 순간 눈물을 흘리고, 눈물이 마르면 사라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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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선 논설위원 euh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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