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용희 연예패트롤] 31일 아침 故 최진영의 발인식이 서울 강남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유가족들의 오열속에 엄숙히 진행됐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는 우리 곁을 떠나가는 고인의 마음인 듯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왜 또 이같은 일이 일어난 걸까?

이은주 정다빈으로 시작된 연예인 자살은 안재환이라는 전도양양한 연기자로 이어지더니, 급기야 장자연, 그리고 최진실-진영 남매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와 사정은 있겠지만 어느덧 유행처럼 돼버린 '연예인 자살'을 보는 팬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것도 나이든 어머니, 어린 자식·조카들을 뒤로한 '굴곡진 모습'이었기에 더욱 아쉽고 가슴 아프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숨막힐듯한 디지털 사회가 낳은 부산물이란 점에서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데로 최진실을 비롯 정다빈 유니 등은 극악한 인터넷 때문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스타급 연예인들이었지만 이들은 항상 바쁘고 힘들었다. 인기는 잠시여서 언젠가는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이것저것 손을 대봤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그들을 반겨 주지 않았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걸린 악플과 소문 때문에 힘들어했던 이들은 결국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으로 자신들의 억울함을 강변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원치않는 우울증은 덤이었다.


이들의 모습은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네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경험미숙에서 오는 사업상의 실수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시작한 다양한 재기 프로젝트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그 누구도 해결해줄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생긴 갖가지 어려움은 다양한 형태로 그들을 옥죄어 왔다. 과연 누가 이들을 감싸주고 안아줄 것인가?


고 최진영의 경우도 '인생의 기둥'이었던 누나 최진실의 죽음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누나의 죽음은 그를 실의에 빠지게 했고, 결국 자신감마저 앗아갔다. 새롭게 시작해 보려던 연예활동도, 두 조카를 위한 다양한 활동도 그에겐 녹록치 않았다. 열심히 노력해 보려했지만 마음껏 안되자 그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마감해 버렸다.


안재완 역시 당시 정선희와 함께 한 화장품 쇼핑몰 사업이 예기치않은 사건으로 무너지고, 재기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도 큰 빚만 지게되자 끝내 자살이란 극한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들의 아픈 사연을 지켜본 한 연예인은 '화려함속의 고독'이란 문구로 자신들의 현 처지를 표현했다. 평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주위에 있지만 결국은 모든 것을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한 연예인에 불과하고, 일이 없으면 세끼 밥걱정을 해야 하는 보통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디지털 시대가 극에 달하면서 이들의 외로움은 더욱 더 깊어지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들은 더욱 더 스스로를 차단하고 꽁꽁 숨어버렸다. 작은 실수가 '침소봉대'되고, 연예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갖가지 억울한 일들…. 그래서 '이 땅에서 연예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허망한 죽음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결정은 너무나 즉흥적이고 유약한 것 아니냐'는 반응들이다. 자 보라! 끝없는 질곡의 늪에서도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이끌어가는 우리네 이웃들…, 터져버릴 것 같은 입시지옥 속에서도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우리 청소년들을…. 이들에게 그들은 '우상'이었다.


우상들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고 과연 이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혹여 그들도 '이같은 유혹에 흔들리지나 않을까'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이들의 죽음은 연예인이란 화려함 속에서 나약해져만 가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표상일 수 있다. '한류 문화국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IT강국' 등 화려한 수식어 뒤에 숨어있는 우리들의 나약함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어 걱정이 하늘에 닿는다. 이들의 삶과 죽음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AD

그래도 우리는 일어서야 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를 풀어나가는 절묘한 '삶의 방정식'을 찾아야 한다. '화려함 속의 고독'은 대중문화가 산업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쩔수 없는 부산물이다. 그래도 그것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해서는 안된다.


앞으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약한 삶이 아닌 질경이 같은 강인한 삶이다. 그래서 최근 우리 곁을 떠난 현인들이 더욱 보고 싶어진다. 강인하면서도 현명했던 그분들….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스님, 진짜 당신들이 그립습니다.


황용희 기자 hee21@asiae.co.kr
<ⓒ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황용희 기자 hee21@asiae.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