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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갈등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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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갈등이 없는 조직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갈등의 감옥’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문제입니다.

고대 로마시대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한때 기자생활을 하기도 했던 강영진씨. 그는 갈등해결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갈등은 힘든 삶을 더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같은 갈등이 잘 풀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 끝에 갈등학에 대해 연구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가 쓴 <갈등해결의 지혜>라는 책을 읽으면서 고대 로마에서 부부간의 문제로 갈등이 많았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권(父權)중심으로 가정이 이끌어지던 당시에 부부간의 관계가 뭐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을까? 이런 의구심을 가졌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중요한 사회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부부싸움을 하면 찾아가는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곳은 로마의 한 언덕에 있는 비리플라카 여신의 신전이었습니다. 비리플라카는 부부싸움의 여신, 남편의 화를 달래주는 여신입니다.

그런데 참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여신상만 있을 뿐, 신관도 그 누구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대신 로마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지키는 규칙 한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규칙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싸움하고, 갈등이 쌓인 부부가 차례로 한 사람씩 하고 싶은 얘기를 여신상 앞에서 고하는 것입니다. 먼저 부인이 자신의 고민과 힘든 사연에 대해 말합니다. 부인이 그렇게 하는 동안 남편은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엔 남편이 여신상 앞에 자신의 이야기를 고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게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듣는 사이에 서로 오해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 하는지 알게 되고 화도 가라앉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부부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고 편한 얼굴로 언덕을 함께 내려오곤 했다고 합니다. 비리플라카 여신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화해를 이끌어 낸 셈입니다.

강 박사는 이 책에서 말합니다. 갈등이 심할 때는 누구나 온전한 대화를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비리플라카 신전에서 로마시대의 부부들이 했던 것처럼 서로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면 효과가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009년. 한해를 시작하며 모두가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새로운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순간에 서 있습니다.

열흘이 지나면 2009년은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혀 버리고 맙니다. 돈이 많다고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매 둘 수는 없습니다. 지위가 높다고 재야의 종소리를 외면할 수도 없습니다. 돈이 있든 없든, 지위가 높든 낮든, 서로 이념이 다르더라도 2009년은 역사 속에 묻어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한해를 맞아야 합니다.

2009년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로 기록될 것입니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검은 먹구름을 헤쳐 나온 저력이 그렇습니다. 어느 나라보다 먼저 위기의 파도 속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위기를 수습하는 우리의 저력, 경제체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은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채 2009년 마지막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등의 문제입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는 이념 갈등이 그렇습니다.

특히 내가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파생된 갈등은 국민들이 인내할 선을 넘었습니다. 세종시 문제를 놓고, 4대강 문제를 놓고, 새해 예산문제를 둘러싼 여야간에 벌이고 있는 반목과 대립은 한해동안 쌓아온 성과를 무색케 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역대 최악의 예산국회, 갈등공화국이라는 용어를 모든 국민들이 인정하겠습니까?

교수신문이 참으로 어려운 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내놨습니다. 방기곡경(旁岐曲逕). 저도 이런 사자성어는 처음 접했습니다. 바른 길을 좇아서 정당하게, 순탄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할 때 쓰는 말이랍니다. 우리 모두가 겸허하게 이 말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른 길을 가면 갈등은 그만큼 줄일 수 있습니다. 정당한 방법을 택하면 어려운 길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새로 맞아야할 2010년. 우리에게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풀어야할 매듭이 곳곳에 산적해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의 매듭을 풀지 않고서는 한 발도 앞으로 갈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가로막는 갈등의 불씨-그것을 잡기위해 ‘마음속의 비리플라카 신전’을 만들 면 어떨까요? 상생도, 조화로운 삶도, 선진국의 진입도 여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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