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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불효자가 양산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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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애착이 지나칠 정도로 강했습니다. 자녀의 생명을 자기 생명의 연장으로 생각했습니다. 자신은 굶어도 자녀들은 굶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업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면서도 피로를 잊었습니다.

자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도리로 받아들인 셈이지요. 못 배운 한(恨)을 자녀를 통해 실현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국이 빠른 시간에 경제강국의 대열에 합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부모님들의 이런 억척같은 자녀에 대한 열정 덕분이 아닐까요?

그래서 노인들 중에는 결혼한 자녀들의 주택마련이나 사업자금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내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후 정작 자신은 빈털터리가 되어 고통을 겪고 있는 부모들이 예상외로 많습니다. 그래서 적당하게 뒷바라지하고 노후에는 양로원행이나 실버타운행을 계획하는 부모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자녀들의 마음이 부모의 열정을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불편해졌을 때 누가 나를 보살피고 부양해줄까를 고민하는 ‘나이든 세대’가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여기에다 출산을 기피 인구감소를 걱정하기에 이르렀으니 누가 출산을 대신하고, 누가 부양을 대신할 것이냐가 사회문제로 등장하게 됐습니다.
어제 신문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재미있는 조사결과를 내놨습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라디오 방송에서까지 이에 대한 걱정을 하더군요.

늙으면 자녀가 자신을 부양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성인 10명 중 1명밖에 되지 않는다니 당연히 충격적인 뉴스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상황이 이러니 자신의 노후는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10명 중 8명이 됐습니다.

부모봉양의 미덕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신문은 이를 두고 ‘낀 세대’의 자화상이라는 표현을 했더군요.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열심히 키웠지만 노후에 자녀도움을 기대하지 않겠으며 노후는 내 스스로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오던 전통이 깨지는 불효자가 양산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어딜 가나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얘기지만 설문조사 결과가 이처럼 통계로 발표되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빈곤가정의 노인을 누가 부양할 것이냐는 문제는 이젠 정부의 몫으로 돌려지게 된 셈입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실버타운 정보를 요청해 현장을 찾아가봤습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설문조사결과보다 더 놀랄만한 얘기를 듣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젊은 사람들이 노인들을 돌보기가 힘들어 실버타운을 떠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왕비들의 시중을 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낀 세대’들이 자녀들에게 몸을 의지하기 싫어 실버타운에 마지막 인생을 맡겼지만 이젠 그곳에서도 찬밥신세가 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30년 후, 40년 후 실버타운을 상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왜냐고요? 저마다 공주, 왕자로 길들여진 지금의 아이들이 노인이 되어 실버타운에 입주하게 됐을 때 어떤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시중드는 실버타운 직원들의 마음을 어찌 알며 그때 실버타운의 젊은 직원들이 과연 노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지난 토요일, 전주 우석대에서 열린 ‘한국작업치료 고령친화산업정책학회’ 학술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떠올리게 된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인을 돌보는 젊은 사람들, 과연 어떤 응대 매뉴얼이 있어야 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노인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잘 짜여진 응대 메뉴얼이 있다 해도 노인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는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노인 또한 나처럼, 혹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단지 세상을 좀 더 오래 살아서 다르게 보일 뿐이다. 그리고 나 또한 노인이 될 것이다’ 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특별한 응대 매뉴얼이 필요할까요?

며칠이 지나면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앞두고 빠른 속도로 양산되는 불효자, 사회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이시대의 노인문제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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