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초 만에 맨홀 뚜껑 열리며 솟구쳤다"…'강남 물난리' 이래서였구나[르포]
안동서 본 '강남 물폭탄 실험실'
왕복 6차선·배수터널·빗물펌프장 실물 구현
AI 홍수예보 학습 데이터로 활용
"30분 걸리던 예측, 1분 안에"
기후위기 시대 '실험하는 도시홍수 대응'
물을 흘려보낸 지 10초쯤 지나자 맨홀 표면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2초 뒤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철제 맨홀 뚜껑이 위로 솟구쳤다. 맨홀 아래에서 밀어 올린 거대한 수압 때문이었다.
지난 19일 경북 안동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건기연) 하천실험센터. 연구진이 우수관 하류를 막은 뒤 대량의 물을 흘려보내자, 실제 집중호우 때 도심에서 반복되는 '맨홀 뚜껑 이탈' 상황이 눈앞에서 재현됐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빗물이 한꺼번에 몰리자 지하 수로의 압력을 견디지 못한 맨홀 뚜껑이 솟구쳤고, 역류한 물까지 도로를 뒤덮으면서 도심은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김종화 기자
순식간에 열린 맨홀 틈새로는 거센 물기둥과 소용돌이가 뿜어져 나왔다. 현장에 있던 취재진 사이에서는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날 공개된 '맨홀 이탈 실험장'은 도시 침수 때 발생하는 압력 변화와 우수관 폐색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구축됐다. 연구진은 어떤 조건에서 맨홀이 들리는지, 또 어느 정도 압력에서 보행자 사고 위험이 커지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있었다.
"강남 물난리, 실험실에서 다시 재현"
이어 연구진은 별도로 조성된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으로 이동해 강남 도심형 침수 재현 실험을 공개했다.
실험이 시작되자 굵은 파란 배관 4개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물은 실제 도로처럼 조성된 경사면을 따라 빠르게 흘러내렸고, 순식간에 도심 저지대 형태의 공간을 채워나갔다.
현장 바닥에는 차선과 경계석, 빗물받이까지 실제 도심처럼 구현돼 있었다. 물은 우수관과 배수터널로 빨려 들어갔지만, 배수 속도를 넘어서자 일부 구간에서는 도로 위로 물이 넘쳐흘렀다.
건기연이 이날 공개한 '도시홍수 파일럿 실험장'은 단순한 수조 시설이 아니다. 서울 강남 도로 설계 기준을 적용해 왕복 6차선 규모 도로와 빗물받이, 우수관, 지하 우수저류시설, 배수펌프장, 배수터널까지 실제 도시 침수 인프라를 실물 크기로 구현한 공간이다.
실험장에는 초당 최대 1.2㎥ 규모의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배관 4개가 연결돼 있으며, 실험장 면적 기준 시간당 최대 5400㎜ 수준의 극한 강우 상황까지 구현 가능하다.
정상화 건기연 하천실험센터장은 "도시홍수는 단순히 비가 많이 오는 문제가 아니라 배수 인프라가 한계를 넘는 순간 발생한다"며 "어떤 조건에서 침수와 맨홀 이탈이 발생하는지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배수터널과 빗물펌프장 시연도 이어졌다. 거대한 파란 배관을 따라 쏟아진 물은 도로 아래 저류시설로 이동했고, 이후 펌프를 통해 다시 외부 수로로 배출됐다. 실제 도시 지하 배수 시스템을 축소한 구조다.
"AI가 홍수 예보관의 '보조 두뇌' 된다"
건기연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단순한 침수 재현이 아니다. 핵심은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인공지능(AI) 홍수예보 기술과 연결하는 데 있다.
현재 기후에너지부 홍수통제소에는 건기연이 개발한 AI 홍수예보 플랫폼이 적용돼 있다. 기존 75개였던 홍수특보 지점은 전국 223개로 확대됐고, 지방하천 비중도 크게 늘었다.
김종민 건기연 전임연구원은 "기존 물리 기반 예측 모델은 결과를 만드는 데 30~40분이 걸렸지만, AI 기반 시스템은 실시간 데이터 입력 후 1분 안에 전국 지점 예측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건기연은 현재 '6시간 전 홍수 예측'을 목표로 AI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강우량과 수위, 유량, 댐 방류량 등 대규모 수문 데이터를 AI가 실시간 학습해 홍수 위험을 예측하는 방식이다.
특히 앞으로는 AI와 물리 기반 수치해석을 결합한 'AI-물리 하이브리드 모델'과, 홍수 예보 전 과정을 지원하는 AI 에이전트(AI Agent) 기술까지 도입할 계획이다.
연구진은 AI를 "예보관의 보조 두뇌"라고 표현했다. 단순히 수치를 계산하는 수준을 넘어 특보 발령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판단하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천보다 도시가 더 위험"
건기연은 앞으로 도시형 침수가 기후위기 시대 최대 재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하천 범람이 주요 홍수 위험이었다면, 최근에는 짧은 시간 좁은 지역에 폭우가 집중되는 '선형 강수대' 현상이 늘면서 도시 침수 위험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건기연 자료에 따르면 AI 홍수예보 체계가 본격 적용된 2024~2025년 홍수 인명피해는 8명으로, 기존 시스템 운영 시기였던 2023년(75명) 대비 약 89% 감소했다. 다만 연구진은 "AI만으로 피해가 줄었다기보다 특보 확대와 정부 대응 체계 강화 등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건기연은 앞으로 반지하 밀집 지역과 중소도시를 대상으로 한 도시침수 모델도 확대할 계획이다. 서울 도림천 일대 반지하 지역 침수 시뮬레이션 연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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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규 건기연 원장은 "기후위기 시대에는 과거 경험만으로 홍수를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며 "실제 도시를 재현한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학적 홍수 대응 체계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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