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물가의 진짜 적은 '변동성'…최고가격제 등판 의미
"물가가 오르냐, 내리냐보다 급격한 변동성이 더 중요합니다. 변동성이 확대되면 결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뜻이니까요."
재정경제부 고위 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물가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볼멘소리에 그는 "물가가 내려가는 속도가 붙는 순간 소비가 멈추는데, 그게 더 위험하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정책 당국의 인식은 분명하다. 정부가 말하는 '물가안정'은 무조건 가격을 끌어내리겠다는 뜻이 아니다. 급격한 오름과 내림, 즉 변동성을 최대한 완화하겠다는 의미다.
겉보기에 물가 하락은 반가운 일이다. 장바구니 부담이 줄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국은 하락의 '속도'와 그 뒤를 잇는 연쇄 반응을 경계한다. 가격이 빠르게 내려가면 소비자는 지출을 미룬다. "조금만 기다리면 더 싸진다"는 기대가 생기기 때문이다. 소비자 지출이 줄면 기업은 생산과 고용을 줄인다. 이는 소득 감소와 수요 위축이 서로를 키우는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올라도 문제다. 실질소득이 줄어들고, 기업은 원가 부담 속에 투자를 멈춘다. 상승이든 하락이든, 속도가 가파르면 경제의 엔진은 차갑게 식어버린다.
정부의 '변동성 경계' 철학이 최근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석유류 최고가격제 도입이다. 중동전쟁의 여파로 국제 유가는 그야말로 널뛰기를 했다. 두바이유는 개전 이전인 2월 27일 배럴당 68.4달러에서 개전 후 3월 19일 137.82달러로, 불과 3주 사이에 101.5% 치솟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국제 휘발유 가격이 17.3% 오를 때 국내 가격이 15.3% 오른 전례가 있다. 이번 중동전쟁에서는 국제가격이 73.9% 폭등했지만, 국내 가격 상승률은 16.6%로 억제됐다.
정부가 시장에만 맡겨두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부 추산에 따르면 3월 소비자물가는 2.8%(+0.6%포인트), 4월은 3.8%(+1.2%포인트)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봤다. 가계의 실질 구매력은 급감하고, 운송·제조 원가 폭등으로 기업들은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정부의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는 강력한 시장 개입 카드였다. 급등하던 국제유가 충격이 국내 물가로 그대로 번지는 속도를 늦춘 셈이다. 거대한 외부 충격을 정책이라는 방파제가 흡수하면서 가계와 기업이 체감하는 부담 증가 속도를 늦춘 것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기저효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고,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누르는 정책은 장기화할수록 부작용을 낳는다. 유가나 환율 같은 거대한 외부 변수를 정부가 끝까지 틀어쥘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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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최고가격제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가격표의 숫자'가 아니라, 경제 주체들이 대비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에 있다는 것이다. 충격을 지연시키고 연착륙을 유도해 경제가 악순환의 늪에 빠지는 것을 막는 것. 극단적 처방인 최고가격제까지 꺼내 들며 당국이 지켜내고자 했던 '진짜 물가안정'의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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