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방관도 살인" 해든이 사건 선고날 모인 부모들 분노
근조화환 100여개 법원 에워싸
자발적 참여 부모들 순천 집결
사법부 향해 무거운 책임 요구
"해든아, 이제는 아프지 않은 곳에서 따뜻한 봄바람만 맞으렴. 어른들이 끝까지 너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여기 모였다."
세상에 태어나 단 133일만을 살다 간 아기천사 해든이의 마지막 길을 정의롭게 매듭짓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부모들이 순천의 하늘 아래 다시 섰다. 23일 오후 2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리는 '해든이 사건' 1심 선고 재판을 앞두고, 법원 앞은 비장한 슬픔과 서늘한 분노가 뒤섞인 엄숙한 공기로 가득 찼다.
아동학대로 생후 133일 만에 세상을 떠난 이른바 '해든이 사건'의 1심 선고를 앞둔 23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 친부모의 가해로 숨진 해든이를 추모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있다. 민현기 기자
"보고도 막지 않았다면 살인 동조"…전국서 모인 부모들 분노
아직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생후 4개월 영아가 차가운 욕조 안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던 '해든이 사건'의 1심 선고가 열린 23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앞은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모여든 시민들의 간절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이들은 특정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들이 아니라 '해든아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라는 오픈채팅방을 통해 뜻을 모은 평범한 엄마와 아빠들이었다.
법원 입구와 외벽을 따라 늘어선 100여 개의 근조화환에는 '인면수심 가해 부모를 사형에 처하라', '아기천사 해든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시민들은 선고 재판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자리에 모여 성명문을 낭독하고 추모식을 진행했다.
이날 오전부터 부산에서 달려온 한 20대 부부는 붉어진 눈시울로 법원을 바라봤다. 이들은 "제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기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도저히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며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 연차를 내고 순천까지 왔다"고 말했다.
"방임 아닌 살인죄 적용하라"…홈캠 영상 공개 후 공분 확산
이날 발표된 성명서의 핵심은 사건의 성격을 '방임'이 아닌 '살인 동조'로 규정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시민들은 "친부가 아내의 학대 사실을 인지하고도 묵인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방임이 아니라 살인의 과정을 지켜본 공범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최근 언론을 통해 공개된 홈캠 영상 속의 잔혹한 상황이 시민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영상 속에서 아이는 지속적인 학대와 방치 속에 고통받고 있었으며, 부모의 태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심했다. 영상 공개 이후 온라인에서는 가해 부모에 대한 엄벌 탄원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고, 이는 곧 사법부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로 이어졌다.
아동학대로 생후 133일 만에 세상을 떠난 이른바 '해든이 사건'의 1심 선고를 앞둔 23일 오후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 가해자인 친부모의 엄벌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민현기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사회, 판결로 답해야"
'해든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에서 발생했다. 당초 부모는 단순 사고사를 주장했으나, 부검 결과 아동의 몸에서 다수의 골절과 심각한 외상이 발견되며 잔혹한 학대 실태가 세상에 드러났다. 친모 A씨는 아동학대 살해 혐의로, 친부 B씨는 아동학대 방임 및 참고인 협박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이날 재판 현장에는 일반 시민 방청객들도 대거 몰려 사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시민들은 법정으로 향하는 가해자들을 향해 침묵 시위를 벌이며 '정의로운 선고'를 촉구했다. 한 방청객은 "영상을 본 뒤 며칠간 잠을 설쳤다"며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이들이 법의 심판을 제대로 받는지 끝까지 지켜볼 것"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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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앞에 모인 시민들은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뿐만 아니라 아동 보호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도 요구했다. 이들은 "해든이는 우리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 아이다. 법원이 내리는 판결의 무게가 곧 우리 사회가 아동의 생명을 대하는 가치가 될 것"이라며 사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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