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줬다" 비판하다 200억달러 동결 해제 검토
강경해진 이란에 협상 난항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이란 간 핵 합의를 맹렬히 비판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이와 유사한 합의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2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5년 이란과 핵 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를 체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공화당 진영에서는 오바마 행정부가 핵 합의와 인질 석방 대가로 현금을 지급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미국이 이란에 지급한 무기 구매 대금 4억달러를 가리키는 것인데,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며 반환이 지연되며 원금 4억달러에 이자 13억달러가 붙어 17억달러가 됐다. 핵 합의와 별개 사안이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이 대금을 지급하며 핵 합의 체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했다. JCPOA는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가 들어서고 탈퇴하면서 사실상 파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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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재의 트럼프 행정부도 JCPOA와 비슷한 수준의 합의를 체결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제재로 인해 전 세계 은행에 묶여 있는 이란의 석유 판매 대금 200억달러의 동결을 해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자금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한 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 이 돈의 동결 해제할 경우 이란이 핵 개발에 활용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란 전문가인 수잔 말로니 브루킹스 연구소 부소장은 "그들은 결국 JCPOA로 이어진 10년이 넘는 긴 협상을 좌우했던 것과 동일한 근본적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며 "핵 연료 농축 문제에 있어서 이란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WP는 백악관의 합의 추진이 일부 지지자들을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하고 있으며, 특히 협상 카드로 자금 제공이 거론되면서 더욱 그렇다고 짚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이란 문제를 담당했고, 지난해 국가에너지지배위원회(NEDC)에서 일했던 리처드 골드버그는 "2000만달러든, 100억달러든 핵심 불법 행위에 대해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는 정권이라면 '그 돈이 결국 이것을 하는 데 쓰인 게 아니냐'는 논란은 항상 생길 것"이라며 "그들의 불법 활동을 간접적으로 보조하고 있다는 비판은 늘 따라다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의 고농축 우라늄을 확보하고, 지하 핵시설을 해체할 수 있다면 "판도를 바꾸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자신이 추진 중인 이란과의 핵 합의는 JCPOA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우리가 이란과 추진 중인 이번 합의는, 버락 후세인 오바마와 '졸린' 조 바이든이 체결한 '이란 핵 합의'로 불리는 JCPOA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며 JCPOA에 대해 "우리 국가 안보와 관련한 역대 최악의 협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다뤘던 핵 문제뿐 아니라 미사일, 하마스·헤즈볼라 등 대리 세력 지원 등 다른 문제까지 포괄하는 더 강력한 수준의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또 이란의 핵농축도 전면 중단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그간 오바마 정부를 맹렬하게 비판해온 만큼 JCPOA보다 조금이라도 진전된 성과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따라 이란과의 합의 체결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JCPOA 체결 당시 미국 측 수석 대표였던 웬디 셔먼 전 국무부 부장관은 "행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하기 때문에 이란의 요구는 2015년보다 더 커질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비축량인지, 농축인지, 미사일인지, 대리 세력인지, 호르무즈 해협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약 그가 10~20년간 농축 중단을 얻어낸다면 그 부분에서는 더 큰 성과일 것"이라면서도 "어떻게 검증할지 불분명하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그 대가로 무엇을 내줘야 하느냐는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2015년과 상황이 상당히 달라졌다는 점도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2015년 이란은 고농축 우라늄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전 이란이 60% 순도의 고농축 우라늄 약 441㎏을 보유한 것을 확인했다. 또 현 이란 정부는 2015년보다 훨씬 강경한 성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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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쟁으로 이란 정부의 군사력과 영향력이 크게 약화해 협상 여건이 일부 조성됐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쥐고 협상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강경파가 정권을 잡은 만큼 오히려 새 합의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이란 제재를 설계했던 리처드 네퓨 컬럼비아대 선임연구원은 "이란은 타격을 견디고 그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며 과거처럼 미국의 압박을 두려워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또 강경파인 이란혁명수비대가 전면에 나서면서 과거 협상 여지를 만들었던 온건파와의 내부 긴장 구조도 사라졌다고 짚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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