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가면 쓴 '마을 발전기금'
박창원/호남취재본부 제주 담당 국장
제주시 이호동의 적법하게 허가받은 건축 현장에서 불거진 1,000만 원 요구 및 사구 모래 무단 반출 사태와 지난해 본지 보도 이후 전국적 공분을 사며 결국 도 지정 축제에서 전격 탈락한 왕벚꽃 축제 '바가지 순대' 논란의 이면에는 모두 '마을 발전기금'이라는 가면을 쓴 구조적이고 강압적인 통행세 갈취 관행이 독버섯처럼 자리 잡고 있다.
마을 발전기금이라는 합법을 가장한 채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제주의 법과 원칙을 유린하는 도 넘은 텃세 문화를 이제는 사법 당국이 철저히 도려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수개월째 멈춰 선 이호동 건축 갈등의 본질은 거창한 환경 보존 이전에 추악한 '돈 요구'에서 시작된 갈등이라는 게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마을 측은 당초 '해안사구 보존'을 주장하며 공사를 막았지만, 그 이면에는 마을회장이 동석한 자리에서 그의 친구인 중장비 기사가 1,000만 원의 거액을 대놓고 요구한 묵인 정황이 확인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보존해야 한다던 사구 모래 20여 대 분량을 해당 기사가 무단으로 파낸 실태까지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는 과거 일부 이권 세력이 업소를 관리하며 뒷돈을 챙기는 방식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특정 세력이 자기 사람을 업소에 꽂아두고 특정 물품을 강제로 쓰게 하며 이득을 취하듯, 이호동 사태 역시 마을회장이 동석한 가운데 친구가 장비 기사로 투입되고, 그 기사가 건축주에게 거액을 요구하며 뗏법을 동원해 공사를 가로막는 판박이 같은 위력 행사가 벌어진 것이다.
"도대체 얼마를 뜯겨야 합니까"라는 건축주의 절규는 합법적인 사유재산권 행사가 제주의 무법지대 같은 텃세 관행 앞에 어떻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지독한 텃세비의 그림자는 비단 공사판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해 4월 전농로 왕벚꽃 축제 당시 '순대 6개 2만 5,000원'이라는 납득 불가능한 바가지요금으로 제주 관광이 직격탄을 맞았을 때도, 그 배후에는 다름 아닌 '마을 발전기금'이 있었다.
당시 힘없는 영세 노점 상인들은 시세보다 3배나 비싼 50만 원에 천막을 강제로 대여받아야 했고, 축제추진위 측은 1,470만 원을 마을 발전기금 명목으로 거둬들였다.
비싼 자릿세를 뜯긴 상인들이 수익을 남기기 위해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악순환의 대가는 혹독했다.
이달 초 제주도 축제 육성위원회는 바가지요금 등으로 물의를 빚은 왕벚꽃 축제를 올해 '제주도 지정 축제' 명단에서 전격 탈락시켰다. 수십 년 역사의 축제가 부당한 텃세비 관행 탓에 굴욕을 맛본 것이다.
과거 지역 사회의 상부상조를 위해 자발적으로 모으던 순수한 자치 자금이, 이제는 상인이나 타지인을 옥죄는 '알박기'와 '통행세'로 변질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자연 보전, 질서 유지 등 그럴듯한 껍데기를 씌워 영업과 공사를 가로막는다. 사실상 합법을 가장한 '조폭식 갈취'와 다를 바 없다는 거센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를 바로잡아야 할 행정 당국의 방관이다. 축제 바가지 논란 때 "경찰에 고발하라"며 뒷짐을 졌던 행정은, 이번 이호동 사태에서도 적법한 인허가를 내주고도 마을의 뗏법에 밀려 사유재산권 침해 현장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불법과 편법을 '민원 해결'이라는 미명 하에 방치하는 사이, 선량한 시민과 관광객들만 부당한 텃세의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제주에서 축제를 열든 집을 짓든, "도대체 얼마를 뜯겨야 합니까"라는 탄식이 끊이지 않는 한 제주의 미래는 없다. 또한 명분 없는 불법적 금전 요구 관행은 사법적, 행정적으로 철저히 근절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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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권과 적법한 경제 활동은 명분 없는 뗏법에 의해 결코 침해받아선 안 되며, 사법 당국의 엄정한 수사와 함께 행정 당국의 뼈를 깎는 각성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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