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월담한 서미화 민주당 의원 인터뷰
시각장애인 의원, 보좌진 손 잡고 전력질주
"탄핵기다리며 국회 지켜준 시민들에 감사"

편집자주'12·3 비상계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조기 대통령 선거로 이어진 지난 1년은 불안과 혼돈, 기대와 희망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K민주주의'의 놀라운 회복력을 세계에 각인시켰지만 혐오와 적대의 균열은 사회를 갈라놓았다. 그날의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과제와 교훈은 무엇인지 진단해 본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때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담을 넘어서 국회 본회의장에 진입했다. 담을 넘을 수도, 달릴 수도 없으리라고 여겨왔던 서 의원은 그날 계엄 해제를 위해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서 의원은 1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비상계엄 당시, 국회 담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상황과 관련해 "오로지 본회의장에 들어가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 의원과의 일문일답


-비상계엄 때 어떻게 국회에 들어왔나

▲그날이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다. 행사가 많아 저녁까지 있다 밤 10시께 귀가했다. 보좌관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TV를 켜보라는 것이었다. 방송에서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한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걸 듣는 순간 계엄 해제는 국회의원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좌진과 연락했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이 있어 함께 달렸다. 집이 국회 근처였는데 그 보좌진이 손을 놓지 말라며, 달려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뛰었다. 갔더니 정문이 닫혀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를 촉구하고 있다. 강진형 기자

AD
원본보기 아이콘

-국회 담을 넘었는데

▲밤 11시쯤이었는데 정문이 닫혀 있었다. 정문에 차벽이 쳐져 있고 수십명의 시민들, 들어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엉켜서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정문에 접근조차 못 하게 했다. 그때 보좌진이 '서미화 의원님이시다. 들어가야 한다' 소리를 쳤다. 그랬더니 어떻게 정문 앞까지 갈 수 있게 됐다. 누군가 담을 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정문을 만져보니 철제로 된 동글동글한 문양이 만져졌다. 여기에 발을 끼우면 (위로) 올라갈 수 있겠다 싶어 올랐다.


-무섭지 않았나

▲넘어가다 다치겠다는 이런 생각은 (당시에는) 들지 않았다. 오로지 '본회의장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꼭대기에 올라가 보니 높다는 것이 딱 느껴졌다. '높네' 하고 멈칫했는데, 안에 있던 분이 "뛰어내려라. 받아주겠다"고 하길래 몸을 던졌다. 알고 보니 먼저 담을 넘은 사람이 임미애 의원이었다. 보좌진이 '서미화 의원이다'라는 말을 듣고 다시 되돌아왔다. 임 의원 손을 잡고 정말 전력 질주했다. 살면서 가장 빠르게 달렸던 거 같다. 무섭기보다는 계엄 해제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보니 본회의장에 도착한 의원 가운데 빠른 축에 속했다. (그전에는) 빨리 달리는 것은 생각도 못 했다. 균형을 잘 잡지 못하니. 더군다나 담을 넘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계엄 해제를 못하는 것이었다. 담 넘고 달리는 순간에는 내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도 잊었다. 나중에 내가 넘은 곳을 가봤는데, 제일 높은 곳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여기를 넘었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강물이라도 건넜을 것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한다.


-비상계엄을 알고 난 뒤 어떻게 본회의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나

▲국회 운영위원회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국정감사 때 비서실장, 안보실장, 안보처장 등의 답변이 너무 무성의하고 막가파 수준이었다. 그들의 답변을 들으며 진짜 계엄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이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 소식에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회의장에 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통약자 이동보장을 위한 법률’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통약자 이동보장을 위한 법률’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

-그 후 1년이 지났다

▲비상계엄 선포된 날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날에는 장애인들도 많았다. 세계 장애인의 날 행사 때문에 국회 주변에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휠체어 등을 타고 달려왔다. 그날 밤 장애인 포함해 시민들이 누구도 집에 안 가고 지켜준 것이다. 그래서 계엄 해제를 의결할 수 있었다. 탄핵도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수백만 시민들이 찾아오지 않았나. 그 힘으로 탄핵이 됐다고 생각한다. 탄핵까지 가는 2주 동안 여러 번 국회를 돌았는데, 젊은 대학생들이 국회 주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은박지 하나 깔고 앉아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가 (학교) 기말고사 때였는데 학생들이 제게 '계엄군이 다시 또 2차 3차 계엄에서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국회를 지키겠다. 의원님들은 국회에서 할 일을 해달라'는 말을 했다. 이들이 교대로 2주간 (국회를) 지킨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AD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이 파면되고 대선을 통해 국민주권 정부가 수립됐다. 짧은 기간 대한민국 국격이 회복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우리 국민이 있어서다.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내란 정리하는 수사가 진행 중인데, 답답하기도 하다. 내란 수괴는 물론 종사자들, 공범들 완전히 종식한다면 한층 더 성숙한 민주주의, 발전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