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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手談)]첫수를 잘 놓아야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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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한판의 바둑은 첫수로 시작된다. 선택은 흑을 쥔 이의 몫이다. 백을 쥔 이도, 관전자도 지켜볼 뿐이다. 흑을 쥔 이가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여정의 밑그림이 달라진다. 서로에게 익숙한 정석을 선택할 수도, 낯설게 느껴질 변형에 눈을 돌릴 수도 있다.


바둑의 역사는 네 귀퉁이 화점에 첫수를 놓는 것을 정석으로 여긴다. 실리와 세력의 타협이다. 익숙한 행마(行馬)는 내게 편한 만큼 상대도 편하다. 초반부터 판을 흔들고 싶다면 새로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금기시됐던, 삼삼(바둑판 구석의 3, 3지점) 첫수를 선택하거나 바둑판 한가운데 점인 천원(天元)에 놓기도 한다.

[수담(手談)]첫수를 잘 놓아야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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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출발이냐, 대변화의 시작이냐는 오롯이 흑을 쥔 이의 선택에 달렸다. 정답은 없다. 다만 선택에 따른 책임이 뒤따를 뿐이다. ‘첫’이라는 관형사는 감정의 동요를 동반한다. 첫눈, 첫사랑 그리고 첫수. 마음 떨리는 감정을 기쁨과 행복으로 승화하려면 기대를 충족하는 실천이 필요하다. 대국의 과정에서 배움을 축적할 줄 알아야 진정한 의미에서 ‘남는 바둑’이다.


바둑은 물론이고, 삶에서도 첫수를 선택해야 하는 때는 수없이 찾아온다. 심사숙고해서 길을 찾을 때도 있고, 그게 첫수였는지도 모른 채 지나가는 일도 있다. 그런 결과가 모여 각자 인생의 지형도가 만들어진다. 모양도 내용도 다른 삶의 궤적. 더디 가더라도 꿋꿋하게 목적지로 다가서는 이가 있고, 성큼 나아갔지만 혼돈의 소용돌이에 자기를 가두는 이도 있다.


그럴 때 인생의 조언자가 곁에 있다면 도움이 된다. 현인(賢人)이 아니어도 조언자는 될 수 있다.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제로 한 당부에 귀를 열어두는 이가 결국 뜻을 이루는 법이다. 우리 사회의 큰 걸음을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조언자인가, 아니면 훼방꾼인가.

격랑의 세월도 이제 끝을 향하고 있다. 시린 겨울의 시간은 지나가고, 봄의 기운이 번지는 계절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겨울의 고난을 버텨냈다. 하지만 기다림이 너무 길었다. 인내의 한계를 넘나들게 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를, 심지어 눈보라까지 휘날리는 공간을 시민들이 채워줘야만 버텨내는 사회를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정치가 답을 해줄 때다. 국민의 갈망을 헤아리는 게 엉킨 실타래를 풀어주는 실마리다. 혐오와 반목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과정. 담대한 여정을 알리는 첫수가 놓일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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