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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 유형문화재 '옥홀' 진품 논란 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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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전후로 광주와 전남에 뿌리를 둔 명문가 2곳에서만 보유해 한때 국보급 문화재로 여겨졌던 '옥홀'이 때아닌 진품 논쟁에 휩싸였다.

그 희소성을 인정받아 A문중 소유 옥홀은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 40호로 지정됐다.

B문중도 현재까지 집안 소유 옥홀을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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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뿌리 둔 명문가 집안 두 곳만 보유
출처·연고·배경 등 불분명해 의혹 잇따라
“역사 기록상 일치하지 않는다” 의견 나와

A문중이 보관 중인 옥홀. 독자제공

A문중이 보관 중인 옥홀. 독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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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를 전후로 광주와 전남에 뿌리를 둔 명문가 2곳에서만 보유해 한때 국보급 문화재로 여겨졌던 '옥홀'이 때아닌 진품 논쟁에 휩싸였다. 역사적 배경에 비춰봤을 때 현실적으로 '옥홀' 존재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옥책 등 다른 문화재의 일부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다. 일각에선 이 옥홀에 대한 재검증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홀(笏)은 왕실의 행사 등 국가적 의례를 진행할 때 신하들이 왕의 명을 받아 적거나, 왕 앞에서 본인의 생각이나 정책들을 발표할 때 글귀 일부를 적어둔 일종의 '메모장'이다.

조선시대 홀(笏)은 직급과 품계에 따라 1~4품까지는 아홀(코끼리 상아), 5품부터 9품에는 목홀(나무)을 사용한다. 옥홀은 옥으로 만든 홀을 의미하는데, 현재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 등을 통틀어 A·B 2곳의 문중에서만 유일하게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희소성을 인정받아 A문중 소유 옥홀은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 40호(1974년 9월 24일)로 지정됐다. B문중도 현재까지 집안 소유 옥홀을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 옥홀들의 출처와 연고, 등장 배경 등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A문중 옥홀은 중종이 최초 하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초 옥홀 존재가 기록된 시점은 1870년대 무렵 작성된 A문중 족보에서다. 당시 허씨 성을 쓰는 사람이 불특정 이유로 A문중의 옥홀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를 알게 된 A문중에서 오늘날의 개념인 '소송'을 통해, 옥홀 소유권을 이전받은 기록이 나온다. 하지만 이때에도 옥홀이란 명칭은 사용되지 않고, 단순 옥패로만 기술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이 옥홀엔 ‘一人有慶寶命維新(일인유경보명유신)'이란 글귀가 쓰여져 있다. 이는 임금의 귀한 대를 새롭게 이어간다는 것은 경사스럽고 기쁜일이다란 뜻인데 이 글귀는 과거 선조(37년 10월 19일)가 정실 부인인 인목왕후의 태임을 축하하며, 하사한 옥책문에 쓰여진 글귀와 일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적 정황상 글귀의 내용과 옥홀 하사받은 시점이 맞지 않은 셈이다.


B문중 소유 옥홀도 이와 유사하다. 이 옥홀엔 ‘선조복유하사이우춘’(宣組伏惟下賜李遇春)이라고 새겨졌는데, 이는 선조가 이우춘이란 인물에게 (옥홀)하사했단 의미를 담고 있다.


얼핏 보면 옥홀을 내린 인물과 받은 인물이 명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B문중 옥홀엔 당초 '선조복유'만 있었단 말이 나온다. 하사이우춘이란 글은 추후 새겨졌을 수 있단 의미다. 실제 두 글의 구조와 형태가 눈으로 확인될 만큼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도 눈에 띈다. 여기에 언제 옥홀을 받았는지에 대한 기록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두 문중이 소유한 이 옥홀들은 모두 길이 27.4㎝, 너비 3.4㎝의 세로로 긴 사각형 형태로 그 크기가 일치한다. 또 상·하단 부위에 구멍도 뚫려 있다.


이는 일반적인 홀에선 볼 수 없고, 오히려 옥책과 크기와 모양이 유사하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 의견이다. 옥책은 왕실에서 책봉, 존호, 시호, 휘호를 올릴 때 옥간에 글을 새겨 여러 겹으로 엮어 만든 문서의 일종이다. 쉽게 엮기 위해 옥책 하단부 등에 구멍을 뚫어 놓는 것이 특징이다. 길이도 25㎝ 내외다.


이와 관련 해당 문중의 한 관계자는 "옥홀의 여러 형태나 모습, 그리고 다양한 기록들을 비춰봤을 때 옥홀이 말 그대로 홀의 용도가 아니었을 수 있다고 본다"며 "다만, 지역문화재로 등록된 만큼 섣부르게 단정지을 수 없다. 보다 정확한 재검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호남취재본부 심진석 기자 mour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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