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일본 '릿교 대학'은 노인들을 위한 입학 정원을 별도로 마련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학위 과정을 단축해주고, 등록금 기준도 낮춰줍니다. 젊었을 때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거나, 은퇴 후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노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거죠.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말까지 도는 국내 실정에서 참고할 수 있는 선례입니다."
인구감소에 따라 학령인구가 줄며 문 닫을 대학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 시대에 대학이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대학 기반 은퇴자 커뮤니티(UBRC, 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 도입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 지난 6일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990년대 일본에서 유학할 때부터 고령자 주거정책에 관해 연구해온 전문가로, 현재는 정부의 관련 연구용역을 맡고 있는 등 시니어 하우징 분야에서 전문가로 꼽힌다.
유 교수는 "현행 제도상 대학의 보유 자산은 교육부 승인 없이는 매각이나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다"며 "지방대학의 유휴시설을 활용해 노인 은퇴촌을 만드는 UBRC는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지방대학과 은퇴 후 삶의 질을 고민하는 노인층 모두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며, 이를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유학 시절부터 노인주택 연구를 시작했다고.
▲1994년 일본 유학을 갔을 때는 재건축 시장을 연구하려 했다. 그러다 일본의 고령화 속도를 보며 우리나라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 생각했다. 주택연금(리버스 모기지)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일본 후생성 과제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노인들이 받은 연금의 절반 이상을 주거비로 쓴다는 걸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노인주택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2007년 여름에, 일본에서 교통패스를 끊어 훗카이도부터 시작해 전국의 노인주택을 돌아봤다. 시설을 방문해 운영 매뉴얼, 비용 체계 등을 꼼꼼히 살폈다. 10년 뒤인 2017년 연구년을 맞이해 다시 한번 일본 전역을 돌며 변화를 관찰했다. 일본의 노인주택은 20여 종류나 되는데, 각각의 특성과 차이점을 이해하는 데 이런 현장 연구가 큰 도움이 됐다.
-UBRC의 구체적인 개념과 장점은.
▲지방대학의 유휴시설과 인력을 활용해 노인 은퇴촌을 만드는 것이다. 학생 수 감소로 지방대학들은 잉여 시설과 인력을 갖고 있는데, 이를 새롭게 활용할 수 있다. 노인들은 학생들과 멘토링도 하고, 평생교육 차원에서 강의도 듣고 할 수 있다. 대학은 새로운 수입원을 확보하고, 노인들은 건강수명을 늘릴 수 있는 환경을 얻게 된다.
-재원 조달은 어떻게 하나.
▲국토교통부의 지역활력타운 조성 관련 기금, 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대응기금, 교육부의 대학지원 등을 결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행안부는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1조원 이상을 갖고 있다. 지방대학의 문제 해결과 지역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모델이다.
-죽을 때까지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과거에는 건강이 나빠지면 한두 달 만에 돌아가셨다. 하지만 지금은 의료기술 발달로 와상노인 상태로 몇 년을 더 산다. 건강수명은 보통 70~75세에서 끝나지만, 그 이후에도 평균수명까지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건강할 때 미리 건강수명을 늘려줄 수 있는 시설로 이주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집은 건강할 때는 좋은 공간이지만, 건강수명을 잃으면 위험한 공간이 된다.
-UBRC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적 보완은.
▲현재는 교육부 승인 없이는 대학의 유휴자산 활용이 어렵다. 매각이나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교육부가 UBRC 설립을 정책적으로 유도하고, 시범사업으로 두세개 정도 먼저 추진해 효과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 현재 동명대, 조선대, 원광대 등이 준비하고 있는데, 아직은 자발적이라기보다 위기감에서 시작된 측면이 있다.
-비용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현재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노인이 부동산을 깔고 앉아있다. 자산유동화가 안 되는 거다. 주거비를 월세로 환산하고, 식비와 가사도우미 비용을 더하면 300만~400만원 정도 든다. 직역연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부부합산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특히 지방에서는 더 저렴한 비용으로 가능하다. 지금 집에서 노동하며 쓰는 비용을 시설로 옮겨가는 개념으로 봐야 한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앞으로 남은 교수 생활 동안 우리나라 노인주택 시장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론적 연구뿐 아니라 실제 사례 연구도 계속할 예정이다. 현재 일본의 노인주택 사례를 정리한 책을 준비 중이고, 내년 1분기 출간 예정이다. UBRC와 CCRC(은퇴자 커뮤니티)를 소개하는 전문서가 될 것이다.
-일본의 노인주택 정보공개 시스템이 잘 돼 있다고 들었다.
▲일본은 '중요사항 설명서'라는 제도가 있다. 시설의 법적 지위, 운영 주체, 직원 수, 입주자 수, 입주자들의 건강 상태, 거주 기간별 인원, 임대료와 보증금 등 모든 정보를 공개한다. 10~30페이지에 달하는 상세한 자료인데, 이걸 보면 시설을 직접 가보지 않고도 운영 현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정보공개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노인주택은 어떤 특징이 있나.
▲일본은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 자립형), 어시스트 리빙(assist living, 지원형), 너싱홈(nursing home, 요양형) 등 단계별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 없는 '어시스트 리빙'이 중요한데, 이는 완전 자립과 요양 사이의 중간 단계다. 운영자 입장에서는 수익성이 가장 좋다. 인디펜던트 리빙보다 공간은 작지만 프리미엄 서비스로 1.5~2배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어시스트 리빙 도입이 필요할까.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건강한 노인을 위한 노인복지주택과 와상 노인을 위한 요양시설만 있다. 중간 단계가 없어서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면 바로 요양원으로 가야 한다. 어시스트 리빙이 있으면 건강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이주할 수 있고, 때로는 건강이 호전돼 자립형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향후 우리나라 노인주택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은.
▲노인주택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닌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UBRC, 실버스테이, 어시스트 리빙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 모델을 개발하고, 정보공개를 통해 소비자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의료, 돌봄 서비스를 접목해 통합적인 케어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정책도 발 빠르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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