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로 알려진 정릉골이 최근 재개발 사업을 두고 조합원 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시끄럽다. 인허가 절차를 대부분 끝냈으나 시공사와 맺은 도급계약 내용이 발목을 잡았다. 조합이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발표한 것과 다른 계약을 하면서 조합 내 갈등이 깊어지게 됐다. 이후 조합장까지 사퇴했으나 조합원들은 "꼬리자르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정릉골구역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16일 조합임원 해임총회를 연다. 비대위 관계자는 "조합이 시공사와 본계약을 체결하면서 선정 당시 내세웠던 까다로운 조건들을 모두 뺐다"며 "시공사에 유리하게 조항을 바꾸면서 조합원들의 부담은 커졌는데 정작 이를 알리지도 않았다"고 해임 추진 이유를 밝혔다.
조합집행부가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 없이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에 돌려준 입찰보증금 700억원이 해임추진의 주된 이유다. 포스코이앤씨가 제안한 공사도급계약안에는 입찰보증금을 준공 후 돌려준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조합은 시공사 선정 일주일 뒤 이사회 의결만 거치고 550억원을 반환했다.
조합은 "사업비로 전환하기로 한 입찰보증금은 무이자 대여가 아니어서 시공사 선정 이후부터 이자 부담이 발생한다"며 "2월 기준 대여금 금리는 5.18%로, 이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필요자금은 빼고 일부 돌려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은 시공사 선정 직후부터 이자 채무가 발생하는 것이 맞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이자약정이 담긴 금전소비대차계약은 시공사 선정 10개월 후 체결했다"며 "그전까지는 별도의 이자약정이 없던 만큼 이자를 줄 의무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입찰보증금을 가지고 있으면 조합이 이자수익을 낼 수 있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비대위가 추정한 피해액은 연 4%로 계산했을 경우 약 17억원에 달한다.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공개된 공사도급계약안과 달리, 시공사에 불리한 문구를 수정해 계약한 것도 문제 삼았다. 대표적인 것이 5503억원 규모의 사업비 대출이자에 대한 내용이다. 포스코이앤씨는 입찰제안 당시 이자 등 금융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본계약에는 이 문구가 빠졌다. 연간 금융비용은 약 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준공까지 3~4년 이상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대략 1000억원 가까운 돈을 조합원이 나눠 부담해야 한다.
조합은 "포스코이앤씨로부터 갑과 을을 혼동해서 공사도급계약안을 작성했다는 회신을 받았고 이를 수정한 것"이라며 "시공사에서 이자를 왜 부담해야하는가. 통상적이지 않다"고 해명했다.
시공사 선정 총회 당시의 내용만 알고 있던 조합원으로서는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 됐다. 한 조합원은 "빠른 추진을 위해 무조건 밀어줬던 조합에 뒤통수 맞은 느낌"이라며 "본계약을 대의원에 일임했어도 조합원 이익과 관련된 내용이 크게 달라지면 이를 설명하거나 추인하는 절차를 거쳤어야 하는데 본계약 체결 후에도 이런 사실을 전혀 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조합장은 사퇴했다. 그러나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비대위는 새 집행부를 꾸려 포스코이앤씨와의 도급계약서에서 잘못된 부분을 재협상하고, 상황에 따라 재계약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조합은 비대위의 해임추진과 무관하게 내년 1월 총회를 열고 조합장 보궐선거와 정비사업계획 변경을 진행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한편 정릉골구역은 국민대학교 뒤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이신선설 북한산보국문역과 인접해 있다. 이 일대는 1960년대 철거민들이 모여 판자촌을 짓고 거주했다. 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가 생전 거주하던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건물이 40년 이상 지나며 노후화되자 개발 요구가 나왔고, 2003년에는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됐다. 이후 2012년 정비구역 지정, 2017년 조합 설립을 마쳤고 2021년 12월 사업시행인가, 올해 1월 관리처분인가를 끝냈다. 재개발을 통해 1400가구가 넘는 타운하우스가 조성될 계획이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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