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직업 교육 전문대 학생수 16%↑
팬데믹·AI 열풍 등에 숙련공 관심 커져
수요 높아 임금도 상승세…현장 연령 ↓
"자녀의 학업 성적이 아주 뛰어나지 않지만 사람 다루는 재주가 특별하다면 배관공이 최고의 직업일 수 있다." 10년 전인 2014년 11월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뉴욕시장을 지낸 정치인 마이클 블룸버그는 한 모임에서 이렇게 발언해 주목받았다. 미 명문인 하버드대에 가려면 연간 5만~6만달러(6800만~8100만원)의 학비를 내야 하지만, 배관공은 이 정도의 학비를 내지 않고 오히려 기술력을 바탕으로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고 그는 설명을 덧붙였다.
블룸버그 전 시장의 이러한 발언이 미국 Z세대를 중심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Z세대가 어떻게 '공구벨트 세대(Toolbelt Generation)'가 됐나'에 주목하며 "대학에 대한 환멸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배관공과 전기 관련 기술자를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입학했던 청년들이 이제는 배관공, 용접공 등 숙련된 현장 기술자의 길을 걷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미 전국대학생정보센터에 따르면 직업 교육 중심의 전문대 등록 학생 수가 지난해에만 전년 대비 1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4년제 대학 학생 수는 0.8%, 일반 전문대는 2.6% 증가한 것에 비하면 빠른 증가세다. WSJ는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8년 이후 최대폭"이라고 했다. 세부 부문으로 보면 건설업 학생 수가 23% 증가했고 냉난방공조(HVAC) 시설 관리업이 7% 늘었다.
대학에 진학하면 학자금 대출이 남아 사회초년생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휴스턴에 사는 18세 조지 벨처는 학창 시절 내내 대학 생활 꿈꿨으나 고교 졸업 직전 아버지가 일하는 석유 산업에 관심을 가졌고 결국 2년제 직업 교육 전문대에 입학하기로 했다.
현재 샌디에이고 병원 건설 현장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는 20세 청년 태너 부기스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중 IT 관련 회사에 다니던 부모님이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고 한다. 지난해 용접공 관련 교육을 신청해 9개월간 배운 뒤 현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하루가 끝나면 기분이 좋다. 신체적으로 움직이고 무언가를 완성했다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부기스처럼 청년들이 현장직에 관심을 갖게 한 계기가 됐다. 펜실베이니아 배관·냉난방 기술자 협회의 마이클 맥그로우 이사는 "코로나19 이후 많은 사람이 기술자가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직업군이라고 인식한 것 같다"면서 "당시 많은 기업이 사무실을 없애면서 숙련공이 안정적이면서도 돈을 잘 버는 커리어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현장 숙련공의 높은 임금은 청년들을 끌어들이는 데 한몫했다. 미국에서는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에 고령화 영향으로 현장에서 숙련된 기술자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력 수요는 늘지만, 공급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면서 임금은 자연스럽게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미 고용정보업체 오토매틱데이터프로세싱(ADP) 통계를 보면 지난해 건설업 초봉 중간값은 전년 대비 5.1% 증가한 4만8089달러였다. 이는 회계 등 전문서비스업의 초봉 중간값(3만9520달러)을 크게 웃돌았다. 건설업 초봉은 4년 연속 전문서비스업이나 IT 유지 관리업 보다 많았다. 맥그로우 이사는 "협회가 운영하는 직업 학교 졸업생이 5년 전만 해도 연 3만5000달러를 벌었는데, 최근에는 6만달러 수준으로 연봉이 오른 상태"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외에도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블루칼라 직업에 관심을 갖게 했다. 생성형 AI가 도입되면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이트칼라 직종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다는 각종 연구 결과에 따라 기술을 배우려는 청년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미국의 숙련공 연령대는 낮아지고 있다. WSJ는 연방 정부 데이터를 인용해 미국의 목수 중간 연령이 10년 새 42.2세에서 40.9세로 낮아졌다고 보도했다. 전기 기사도 같은 기간 중간값이 2.9세 떨어졌다. 배관공과 HVAC 기술자도 젊어지는 추세라고 WSJ는 전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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