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100세…美코네티컷 자택서 사망
1970년대 미·중 핑퐁외교의 주역
최근까지도 양국 관계 개선 목소리

1970년대 냉전 상황에 있던 동·서 진영 간 데탕트를 끌어내며 20세기 현대사의 산증인으로 평가받아온 세계적인 외교 석학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이 29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100세.


키신저어소시에이츠는 이날 키신저 전 장관이 미 코네티컷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단체는 키신저 전 장관의 사망 원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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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외교 주도한 美 국무장관…소련과도 데탕트

독일계 유대인 출신의 미국 외교관이었던 키신저 전 장관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등으로 재임하며 미국의 외교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냉전 시기에 이상주의보다는 현실주의 외교에 집중했다.

특히 키신저 전 장관은 1971년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역임하며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이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중국통으로 직접 중국을 100차례 이상 방문, 당시 첨예하게 대립을 해왔던 미·중 사이에서 '핑퐁외교'를 주도했다.


그는 1971년 중국을 두 차례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회담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2월 닉슨 대통령의 방중, 마오쩌둥 주석과의 미·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이는 미·중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처음으로 23년간의 적대를 뒤로 하고 관계 개선에 나선 것으로 평가받는다.

1973년 2월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사진 왼쪽)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사진 오른쪽)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1973년 2월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사진 왼쪽)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사진 오른쪽)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이미지출처=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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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사진 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의 모습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1972년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사진 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의 모습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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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 대통령의 방중 이후 미·중 수교의 물꼬가 터졌고, 1979년 공식 국교를 수립하는 데 발판이 됐다.

키신저 전 장관은 옛 소련과 데탕트를 추진, 1969년부터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I) 협상을 주도해 1972년 협정을 체결하는 데 공을 세웠다. 또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였던 베트남전 휴전 협정을 유도했다.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3년 키신저 전 장관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키신저 전 장관을 '미국의 냉전 역사를 설계한 인물'이라고 표현하고 "전후 시대의 가장 강력한 국무장관으로 칭송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의 복잡한 유산이 여전히 중국, 러시아, 중동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치 박해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출신
(사진출처=키신저어소시에이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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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계 유대인 출신인 키신저 전 장관은 1923년 5월 27일 독일 바이에른주 퓌르트에서 태어났다. 하인츠 알프레트 키싱거(Heinz Alfred Kissinger)가 그의 독일식 이름이었다. 15세가 되던 해인 1938년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그는 가족과 함께 영국 런던을 거쳐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뉴욕 시티칼리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던 1943년 미 육군에 징집됐고, 전후에는 독일 주둔 미 군정청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1950년 하버드대에서 정치과학 학사 학위를, 1951년과 1954년에 각각 같은 대학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 학위 취득 이후 하버드대 전임강사와 정치학 교수로 몸담으면서 1958년 국제문제센터를 공동 설립하고, 미국외교협회(CFR)와 랜드연구소를 비롯한 싱크탱크와 미 국무부 등의 컨설턴트 등으로 활약했다.


1957년에는 소련의 공격에 대한 '대량 핵 보복' 정책에 맞서 전술적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를 함께 사용하는 이른바 '유연 대응 전략'을 강조한 책 '핵무기와 외교정책(Nuclear Weapons and Foreign Policy)'을 출간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됐다.

최근까지도 활동 왕성…올해는 AI에 큰 관심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0월 24일 미 뉴욕에서 열린 행사에서 "미·중의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가 세계 평화와 진보에 필수적"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신화연합뉴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0월 24일 미 뉴욕에서 열린 행사에서 "미·중의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관계가 세계 평화와 진보에 필수적"이라고 발언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신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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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는 국무장관 퇴임 이후에도 저술 및 연구 활동과 강연 등을 통해 미 외교정책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핵무기와 외교정책, 중국 이야기 등 다양한 주제의 많은 저서를 남겼다. 또 고령에도 국제 컨설팅 회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 회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CFR, 애틀랜틱 카운슬 등의 멤버로도 활동했다. 올해 7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위해 직접 베이징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공개적으로 외교 현안은 물론 인공지능(AI) 이슈를 언급하며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내놨다. 지난 5월 100세 생일을 맞은 키신저 전 장관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인류의 미래가 미·중 관계에 달려 있다"면서 최근까지 양국 관계 개선에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당시 정세가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과 비슷하다면서 양국이 대화로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또 AI의 의미에 큰 관심을 보이며 미·중이 이와 관련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기술이 이미 공개된 상황에서 양국이 핵 군축처럼 AI 군사능력에 대해 억지력을 증강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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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전 장관의 유족으로는 50년간 함께한 아내 낸시 마긴스 키신저와 첫 아내 앤 플레이셔 사이에서 낳은 자녀 2명, 손주 5명이 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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