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발목만 안 잡아도 돼요. 기업들이 잘하는데요."
지난해 11월 정부와 배터리 기업들이 뭉쳐 만든 민관 합동 '배터리 얼라이언스', 이른바 'K-배터리 원팀'을 두고 배터리 업계 관계자가 내놓은 자조 섞인 이야기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20~30년간 에너지 전환 시대를 준비했다. 이에 비해 정부는 마땅한 첨단 산업 지원 정책 없이 기업들의 행동만을 기다렸다. 그간의 맥락 때문에 민관 합동 '배터리 원팀'이 강조됐지만, 산업계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배터리 원팀의 저력을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 중국의 흑연 수출 통제 문제다. 다음 달부터 중국은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의 주원료인 인조흑연, 천연흑연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중국산 흑연에 대한 의존도가 90% 이상인 국내 배터리 산업을 겨냥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다.
수출 통제 문제를 우려만 한다고 해결책이 나오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 배터리 산업에서 가장 취약한 원료 공급망을 쥐고 흔드는 전략을 다른 국가가 세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산업에서의 불확실성은 막대한 투자금을 감당해야 하는 배터리 기업들의 자금 수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흑연 공급 부족이 현실화하면 생산 차질까지 우려된다.
우리 경제는 늘 외부 충격을 겪어왔고 그때마다 답을 찾았다. 정부가 시의적절한 대응으로 위기를 극복한 사례들도 있다. 코로나19 초창기 '서울역 회의'가 대표적이다. 2020년 1월 27일 당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주요 진단키트 업체들과 함께 서울역에서 주재한 회의다. 당시 정부측은 기업들에게 시약과 키트 제품 개발을 제안했고 긴급사용승인 계획도 밝혔다. 외신은 이 회의가 코로나19 초창기 한국이 발빠르게 감염병에 대한 진단 체계를 꾸리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2019년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제한 조치 한달만에 정부가 추경을 통해 R&D(연구개발) 예산 2400억원을 지원해 반도체 소재 국산화를 앞당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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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흑연 공급망 역시 발빠르고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다. 수출 통제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구체적 계획이 있어야한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시장을 잠식한 원료의 제련, 가공 분야에 대한 R&D 지원과 해외 자원 개발, 원료 무역에 대한 인센티브를 보다 강화해야 한다. 넋 놓고 기다려선 답을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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