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능력은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철학적인 고민이자 종교적인 성찰이 녹아 있는 물음이다. 사회 각 영역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이들이 있다. 뼈를 깎는 고통과 인내, 노력의 땀방울이 모여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전환한 이들. 사회에서는 이를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표현한다.


입신은 지혜나 기예 등이 극히 뛰어나 신묘한 경지에 들어갔다는 사전적 의미가 있다. 프로바둑의 세계에서는 9단을 일컬어 입신이라 칭한다. 더는 오를 수 없는 바둑의 최고봉, 9단 등극은 그 자체로 영광이다. 입신이라는 호칭에는 경외감이 녹아 있다.

한국에서는 9단, 즉 입신에 이른 현역 프로기사가 101명에 달한다. 김정현 9단과 한웅규 9단은 각각 지난 6월28일과 6월29일, 현역 기사로는 100번째와 101번째 입신의 대열에 합류했다. 한국기원이 전한 프로기사 명단을 살펴보면 1단부터 9단 가운데 9단이 가장 많다.


[수담(手談)]입신(入神)의 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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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명의 입신 중에서는 현역 세계 최강인 신진서 9단을 비롯해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 서봉수 9단, 유창혁 9단 등 한국 바둑의 르네상스를 견인한 인물이 포함돼 있다. 남성의 전유물도 아니다. 최정 9단, 조혜연 9단, 박지은 9단 등 여성 기사들도 입신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은 프로 1단이 330명이지만, 9단은 56명에 불과하다. 한국과 비교하면 입신에 이른 이는 절반 수준이다. 바둑의 인프라와 실력 모두 중국은 세계 최고로 꼽을 만한 나라다. 그런 중국과 비교한다면 한국은 입신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기사가 입신에 이르는 과정을 폄훼할 수 있을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한국 프로바둑에서 가장 먼저 입신에 이른 인물은 살아 있는 전설인 조훈현이다. 그는 1982년 10월에 9단에 올라섰다. 9단은 8단보다, 8단은 7단보다 뛰어난 바둑 실력을 지녔을까. 일반의 상식은 그럴 것 같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도 않다. 프로바둑의 세계에서는 단수가 곧 실력의 우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창호는 1992년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를 제패할 당시 5단이었다. 17세 나이로 세계 대회에 우승하면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입신이 최고의 실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면 상징적인 자리로 봐야 할까. 프로기사라면 누구나 입신을 꿈꾸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된 자리가 아니다.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소수의 기사만이 넘볼 수 있다.


현역 최고령 입신인 고재희 9단 사례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1939년 7월24일생으로 만 84세다. 1959년에 프로기사로 입단했는데, 2018년에 9단으로 승단했다. 누군가 태어나서 환갑을 바라볼 나이인 60년 가까운 세월을 프로기사로 살아가며 숱한 고비를 이겨낸 뒤에 이른 고지가 바로 입신이다. 까마득한 후배가 실력으로 자기를 뛰어넘는 장면을 수없이 지켜봐야 하는 상황. 포기의 유혹 앞에서 자기를 다스리며 절치부심 각오를 다져야 했던 세월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기력(氣力)은 쇠약해질지 모르나 바둑의 열정까지 빼앗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한 기력(棋力)의 담금질은 결국 인고(忍苦)의 수행자를 입신의 길로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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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바둑의 역사는 우리에게 노력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당신은 진정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인고의 수행자가 될 자격이 있는지에 관해서….


류정민 이슈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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