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트렌드]예전만큼 못 마셔도…각양각색 술 문화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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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충남 당진에 위치한 신평양조장을 방문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선정하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통해 양조 갤러리와 체험장을 갖춘 곳이어서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었다. 1933년부터 이어오는 공간에서 어느덧 50대가 된 3대째 사장에게 탁주의 역사를 들으면서 백련막걸리를 마셔보는 경험도 좋았다. 강릉에도 수제 맥주로 유명해진 버드나무브루어리가 있다. 올해 60대가 된 사장은 얼마 전부터 평생의 숙원사업이던 전통주 세계화에 힘을 쏟겠다며, 누룩 빚기 자동화를 하는 연구에 한창이다. 가수 노사연의 '바램'이란 노래 가사처럼, 지역 양조장에 가면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사례들을 만나곤 한다.


술 트렌드를 꺼내려고 서론이 길어졌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술부심’이 강하다. 술을 잘 마신다는 자부심을 말한다. 좋아하는 소주 브랜드가 명확한 ‘소주 부심’, 첫 잔은 무조건 한번에 마셔야 한다는 ‘원샷 부심’, 주종별 도수가 얼마인지를 재고 따지는 ‘도수 부심’, 라떼는 아무리 마셔도 안 취했다는 ‘주량 부심’, 해장도 술로 해야 한다는 ‘숙취 부심’이 있을 정도다. ‘주태백이’란 말도 말술 애주가(愛酒家)로 손꼽히는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인 이태백(李太白)에서 따온 말인줄 알았는데, 주정뱅이의 전라도 방언이었다. 대한민국 술 소비량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내내 세계 최상위권이었다. ‘폭탄주’를 빼놓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1년 OECD 건강통계를 연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5년 1인당 순수 알코올 9.1리터를 마시는 것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술 소비량은 꾸준히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대한민국 주류시장은 변화하고 있다. 인구 구성 피라미드가 역삼각형으로 고령인구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로 술을 즐기게 되면서, 다품종 소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술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전체 주류 소비 총량은 감소했지만, 주종은 다양해지고 신상품 술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저렴한 술을 듬뿍 마시는 것보다 프리미엄 술을 맛있고 적게 마시자는 소비 패턴도 자리잡아 가고 있다. 더 이상 참이슬과 처음처럼이 양분한 시장이 아니라 다양한 주종과 브랜드가 출현했다. 희석식 소주가 대세였는데, 어느 덧 증류식 전통 소주, 위스키가 그 자리를 대체해가고 있고, 양조주로는 와인, 막걸리, 수제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수제’ 술을 맛보려는 관심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실제 자신만의 술을 담그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이때 건강을 고려해서 천연재료만을 사용한다거나 과일을 첨가하여 달콤한 맛을 낸다거나 하는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어떤 술 종류와 음식이 어울릴지를 시도하는 페어링도 유행이다. LG전자는 맥주를 만들 수 있는 홈브루 기계를 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간 음주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술을 마시는 ‘빈도’ 항목이 우려되는 층이 있다. 바로 50대 시니어들이다. 술을 ‘거의 매일’ 마신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고도 성장기를 살면서 그야말로 술 권하는 사회를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0년 연령별 '알코올 의존증후군' 조사에서 50대는 27.6%가 알코올 중독 수준이었다. 비교군이라 할 수 있는 40대는 22.3%, 60대가 21%였다. 코로나 격리기간 동안 대규모 술모임이나 술자리가 줄었지만, ‘혼술’과 ‘홈술’은 늘었는데 시니어 세대 중 과음과 폭음 관리가 안된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옛날 시니어 세대의 술 문화는 폭탄주, 어우러져 돌려마시기가 대세였지만, 변화의 물결은 시작됐다. 시니어의 은퇴 후 로망 중 하나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술’이지만 추구하는 방향은 각양각색이다. 작게라도 친구나 지인이 삼삼오오 같이 양조장에 직접 투자하거나, 전국의 양조장 투어를 하는 것이 그 중 하나다. 인생 3막을 꾸리기 위해 국경을 넘어 와인을 배우러 유럽으로 떠났다가 60대 와인 소믈리에로 변신하기도 한다. 시니어들은 일본으로 사케 투어를 다니거나 중국 고량주를 모은다거나, 지역으로 귀촌하여 술을 전문적으로 빚기도 한다.

작년 가을, 운 좋게도 주류회사의 제로 슈거 소주라는 신제품 출시 직전 시음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술꾼 10명이 모였는데 필자를 제외하고 전원 2030세대였다. 왜 대량 소비를 하는 시니어 세대는 부르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젊은 층이 신선한 시도에 반응하고 실제로 맛있게 느껴야,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선택을 통해서 시니어 세대도 익숙한 술 브랜드에서 벗어나 신제품을 맛본다고 한다. 회식때도 예전엔 부장님만 선택권이 있었다면, 지금은 신입사원도 술을 고를 수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가족간에도 자녀가 그런 역할을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취하는 것’보다 ‘재미’, ‘신선함’과 ‘맛’을 따지는 것 같다.


최근 ‘백수환동주’를 마셨다. 녹두와 쌀로 만든 술인데, ‘백발의 노인이 아이가 된다’는 뜻으로, 병을 물리치는 약이란 의미가 있단다. 물이 들어가지 않아 걸쭉했다. 술을 담가온 50대 주인장이 술에 대한 맛과 향, 숙성방법과 역사를 길게 읊었다. 정말 재밌어보였다. 어려서는 술 마시는 것을 즐겼다면, 나이들수록 예전만큼은 못 마신다. 그럼에도 여전히 술을 인생의 낙으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생기고 있다. 시니어여, 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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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람 써드에이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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