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재동 서울행정법원./사진제공=서울행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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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비밀을 침해당한 회사가 가해 회사를 면책해주는 조건으로 받은 합의금을 '지적재산 사용료'로 취급해 세무 당국이 부가가치세를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김순열)는 미국에 본사를 둔 실리콘 제품 제조·판매사의 자회사인 A사가 역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부가가치세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사는 2012년 4월 경쟁업체인 B사가 A사에서 15년간 근무하다가 퇴사한 C씨를 본사 실리콘영업부 부장으로 영입하자 C씨와 B사 임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과정에서 C씨가 퇴직 전 실리콘소재·LED 산업소재·태양광 소재 등의 배합이나 제조공정에 관한 A사의 중요한 영업기밀이 담긴 파일 총 499개를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해 빼돌린 사실과 이중 일부 영업비밀을 B사로 이직한 뒤 B사 기술팀에 누설한 사실이 드러났다.

C씨와 B사 소속 D 부장은 2015년 9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A사는 2015년 4월 1일 B사와 지적재산권 침해와 관련된 최종합의서를 작성했다. 합의서에는 ▲합의서 작성 이전에 발생한 B사의 기밀지적재산 침해에 따른 모든 청구권을 A사가 포기하고 ▲B사와 B사 임직원들의 책임을 무조건적으로 철회 불가능하게 면제해주고(다만 특허, 상표, 저작권법에 따른 청구권은 면제사항에서 제외) ▲향후 2020년 3월 31일까지 B사가 합의가 된 제품들의 연구·개발·판매 등에 A사가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사용하더라도 A사가 지적재산 침해를 이유로 한 어떠한 청구도 하지 않기로 하는 대신 ▲B사가 30일 이내에 미화 1900만달러의 일시납입금을 지급하고 ▲2015년 12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3회에 걸쳐 각 500만달러씩의 연분할납입금을 지급하는 등 총 34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B사는 합의서에 따라 2015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A시에 4회에 걸쳐 총 미화 1700만달러를, A사의 모회사인 미국 본사에 1700만달러를 각각 지급하고, 이를 지급수수료(기술자문료)로 회계처리한 후 사용료소득으로 15%의 법인세를 원천징수했다.


그런데 서울지방국세청장은 2017년 12월 5일부터 2018년 3월 23일까지 B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 뒤 '이 사건 합의금은 지적재산 사용에 따른 사용료에 해당한다'는 전제에서 B사 관할세무서장에게 통보하고, 피고 역삼세무서장에게도 부가가치세 매출누락 자료로 통보했다. 이에 따라 역삼세무서장은 이 사건 합의금이 A사의 사용료 매출 누락임을 전제로 A사에 30억400여만원의 부가가치세를 부과했다. A사는 이에 불복해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A사는 "부가가치세법 제4조 1호는 부가가치세의 과세대상을 사업자가 행하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으로 규정하고 있고, 손해배상금이나 위약금은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대가가 아니어서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에 포함될 수 없다"라며 "이 사건 합의금의 지급경위, 산정내역 등에 비춰 볼 때 B사의 '지적재산 침해'라는 위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금일 뿐 '용역의 공급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과세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부가가치세 과세 대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원용했다.


앞서 대법원은 "부가가치세법 제29조 1항은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에 대한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은 해당 과세기간에 공급한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가액을 합한 금액으로 한다'라고 규정하면서, 1호에서 '금전으로 대가를 받는 경우: 그 대가'를 들고 있다"라며 "위 각 법령의 문언 내용과 체계에 의하면,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이 되는 공급가액이란 금전으로 받는 경우 재화나 용역의 공급에 대가관계가 있는 가액 곧 그 대가를 말한다 할 것이므로 재화나 용역의 공급대가가 아닌 위약금이나 손해배상금 등은 공급가액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앞서 본 사실 및 법리에다가 변론 전체의 취지 비춰 알 수 있는 사정들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합의금은 지적재산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금의 성격을 가진다고 봄이 타당하고 단순히 지적재산에 대한 장래의 사용료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이와 달리 '용역의 공급대가'라는 전제에서 이뤄진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다"며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의 주장은 이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이 사건 합의서는 B사가 C씨를 채용해 A사의 영업비밀 등을 취득함으로써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고, 대신 B사와 그 임직원들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한 손해보전의 목적이었던 점 ▲만일 이 사건 합의서가 '지적재산 사용료'(Royalty)에 관한 것이었다면, 그 전문에 당사자 사이의 분쟁의 존재 사실과 그러한 분쟁에 따른 불확실성 등을 피하기 위한 취지가 기재될 이유가 없다는 점 ▲이 사건 합의금은 실제로 이 사건 합의 이전에 발생한 영업비밀 등 침해 행위로부터 B사와 그 임직원을 면책하기 위해 지급된 돈이라는 점 ▲합의서 내용 중에 2020년 3월 31일까지의 B사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은 B사가 기왕에 취득한 A사의 영업비밀 등을 이용해 실리콘 기반 제품을 제조하는 것을 A사가 문제삼지 않기로 한 데 따르는 일련의 조치에 불과하므로, 위 규정만을 근거로 이 사건 합의금이 향후 지적재산의 사용료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합의서에는 이 같은 면책 규정에도 불구하고 A사가 B사를 상대로 특허, 상표, 저작권법에 따른 청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면 A사는 이 사건 합의서를 통해 B사의 과거 영업비밀 등 침해를 이유로 B사와 그 임직원의 손해배상책임이나 형사책임만을 면책했던 것으로 보이고, 문제된 A사의 영업비밀 등 지적재산에 대해 B사에게 향후 완전한 사용권을 부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한편 피고 역삼세무서장 측은 "장래의 사용을 위해 지급하는 대가는 손해배상에 해당할 수 없고, 이 사건 합의서에 기재돼 있는 효력발생일, 확약기간, 확약사항과 같은 내용은 일반적인 손해배상금에 관한 합의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최소한 합의서를 작성한 2015년 4월 1일 이후 B사가 A사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면책해주는 대가로 지급받은 합의금은, 사실상 지적재산권 사용료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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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판부는 "이 사건 합의서 제3조는 '합의서의 효력발생일 전까지 B사가 A사의 기밀지적재산을 침해해 발생한 책임 등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합의에 따라 면책되는 책임의 시적 범위를 정하기 위해서 효력발생일에 관한 규정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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