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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된 피폭]③"북핵, 인권문제…국제사회 압박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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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문제 제기' 탈북민 출신 최경희 박사
전환기정의워킹그룹, 4년간 피폭 추적조사
"검사 경과 공개하고 국제 공조 이끌어야"

편집자주한반도를 안보 불안에 몰아넣는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핵실험장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이 한반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를 검증하고 대비하는 건 국가의 몫이다. 북핵은 안보를 넘어 인권의 문제라는 점을 조명하고 정부의 과제를 모색한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피폭 우려를 검증하는 작업을 계기로, 북핵 위협에 대한 인식이 안보에서 인권의 영역까지 확장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피폭 조사 재개를 앞둔 통일부는 검증의 투명성을 담보하되,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움직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경희 "의심의 여지 있다면 밝히는 게 정부 역할"
통일학술연구단체 사단법인 샌드(SAND) 연구소 최희경 대표가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북한 핵실험장 부근 주민들의 피폭 우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통일학술연구단체 사단법인 샌드(SAND) 연구소 최희경 대표가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북한 핵실험장 부근 주민들의 피폭 우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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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처음 제기된 건 정부가 아닌 민간의 영역이었다.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최초로 도쿄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서 샌드연구소를 설립한 최경희 대표다. 그는 길주군 출신들이 이상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을 포착하고, 직접 23명을 심층 조사했다. 그 결과, 원인 미상의 두통과 체중 감소, 감각기능 저하, 무기력증 등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을 찾아냈다. 전형적인 피폭의 증상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샌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최경희 대표는 "길주군 출신들이 겪는 문제를 조사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실험을 우려하면서도, 주민들의 생명권 측면에선 마땅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은 물론 남한 주민까지, 즉 한반도 전역의 안전을 위해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검증하는 게 필수라고 거듭 강조했다. 최 대표는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면 해당 지역에서 몇만 년을 간다고 한다"며 "당장은 북에 있는 주민들만 위험할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문제를 인식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통일이 이뤄진다 해도 이 지역에 어떻게 접근할 건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에 아쉬움을 표하면서 윤석열 정부가 보다 전향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방사능 문제는 국가가 나서지 않는 이상 개인적 차원에서 문제를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다"며 "문제는 충분한 우려가 있는데도 정치적 프레임을 씌워 바라보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문제를 정치적 기준에 따라 수용해선 안 된다"고 역설했다.

"폐쇄적인 통일부, 의지 있다면 투명하게 공개하라"
왼쪽부터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이영환 대표, 신희석 법률분석관, 박송아 연구원, 수헤나 메흐라(Suhena Mehra) 연구원.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지난달 21일 풍계리 핵실험장에서의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4년간 추적해온 결과를 담은 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

왼쪽부터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이영환 대표, 신희석 법률분석관, 박송아 연구원, 수헤나 메흐라(Suhena Mehra) 연구원.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지난달 21일 풍계리 핵실험장에서의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4년간 추적해온 결과를 담은 특별보고서를 발간했다.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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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최근 길주군 출신 탈북민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건 대북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역할이 컸다. 문재인 정부가 피폭 우려를 부정했던 지난 4년 동안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가능성을 추적했고, 지난달 21일 67쪽 분량의 특별보고서를 발간한 것이다. 이로부터 단 사흘 만에 통일부는 전수조사 방침을 내놨다.


인권단체로서 유의미한 성과지만, 환영만 하고 있진 않다. 최경희 대표가 지적했듯이 '보편적 가치'에 해당하는 인권 문제를 정권의 기조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는 통일부의 폐쇄성과 기밀주의를 꼬집으며 투명하고 공개적인 검증을 촉구했다.


이 대표는 "피폭 우려를 대하는 통일부의 태도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과 방사성 물질 유출을 감추기 급급했던 구소련 관료들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며 "통일부는 북한 정권에 유화적인 대통령이 집권할 때마다 북한과의 교류를 터 부처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평양에서 통일부를 특정해 신경질 낼 만한 요소는 회피하곤 했다"고 직격했다.


따라서 상반기 중 재개될 검사에선 투명성과 개방성을 담보하는 게 핵심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통일부가 문재인 정부 시절 검사는 대조군이 없었다고 자인한 만큼 앞선 검사는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며 "이번 전수검사 방침도 급한 불만 끄려 한 것인지, 권영세 장관이 정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통일부가 우려를 검증하고 대비할 의지가 있다면 투명하고 개방적인 검사는 물론 탈북민 의료지원, 북한에 대한 합동조사 등 후속조치 구상까지 다뤄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정부보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NGO 등의 의견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르노빌 드러낸 건 국제사회 항의…北 압박해야"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구재단 '개혁과 기업가정신·지속가능성을 위한 포럼(FORES)'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 스웨덴 정부 관계자와 각국 외교관·연구자 등에게 풍계리 핵실험장의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분석한 특별보고서를 소개했다. 왼쪽부터 신희석 법률분석관과 이영환 대표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구재단 '개혁과 기업가정신·지속가능성을 위한 포럼(FORES)'이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 스웨덴 정부 관계자와 각국 외교관·연구자 등에게 풍계리 핵실험장의 방사성 물질 유출 우려를 분석한 특별보고서를 소개했다. 왼쪽부터 신희석 법률분석관과 이영환 대표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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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정의워킹그룹의 또 다른 축은 신희석 법률분석관이다. 하버드 법대 출신이기도 한 그는 외교와 인권, 국제법을 두루 담당하고 있다. 이번 특별보고서를 발간한 직후에도 이영환 대표와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날아가 스웨덴 정부 관계자와 각국 외교관, 연구자 앞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의 위험성을 소개했다.


신 분석관은 한국이 아닌 스톡홀름에서 세미나를 준비한 배경에 대해 "체르노빌 사태가 터졌을 때 소련의 은폐 시도와 기밀주의에 대항하고 진상이 드러나게 한 건 주변국의 강력한 항의와 해명 요구였다"며 "당시 스웨덴 정부 역시 대기 상황과 방향을 역추적해 방사성 물질이 소련에서 날아온 것으로 추정하고 진상을 밝히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보고서를 국제적으로 동시 공개하면서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찾아 정부, 의회, 연구기관, 국제인권단체 20여 곳에서 비공개 브리핑을 진행했다. 신 분석관은 "비공개 일정을 마친 뒤 스톡홀름에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국제적 진상조사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과 지지가 매우 높았다"며 "국제연구기관 인사들은 핵실험장의 위험성에 놀랐고, 평화 슬로건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숨기려 했던 것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 재개를 앞둔 통일부에 '민간이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는 방식'을 제시했다. 과학계·의학계의 체계적인 공개 연구와 분석, 발표까지 이어져 북한이 이 문제를 회피할 수 없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다. 신 분석관은 "지체 없이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간담회를 열 것을 촉구한다"며 "국제사실조사위원회 구성을 비롯한 국제적 공조로 나아갈 수 있도록, 통일부는 전수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내외신 언론들과 국제사회에 상세한 경과를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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