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최고 영장류학자가 본 '폭력의 기원'

'학교폭력'(학폭)에 한국 사회가 들끓고 있다. 신임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됐다가, 자녀의 고등학교 시절 학폭 가해 사건이 알려지면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 사태는 공분을 키웠다.


집단 내 괴롭힘은 언제나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였다.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다. 간호사들의 태움, 직장 갑질 등 유사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괴롭히는 폭력성의 발현은 청소년만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학폭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낸 이유다.

왜 인간은 폭력을 행사할까. 게다가 그 폭력성이 자신과 동일한 종(種)으로 향하는 이유는 뭘까.


"인간의 폭력성은 본능이 아니라 '발명'된 것"
학교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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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영장류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야마기와 주이치 교토대 총장은 2018년 '인간 폭력의 기원'이라는 서적을 펴냈다. 수십 년간 학계에 몸담으면서 고릴라를 연구해 온 야마기와 교수의 관심사는 '영장류의 폭력'이다.

그는 과거 아프리카 열대 숲을 오가던 중 우간다,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등 현지에서 벌어진 내전·대량 학살 등을 목격한 뒤, 사람의 폭력이 어디에서 기원한 건지 의문을 품게 됐다고 한다.


야마기와 총장에 따르면 20세기만 해도 사회학계는 사람의 폭력성이 본능에서 기인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먼 과거 인간의 조상은 사냥, 채집으로 식량을 얻었는데, 이 과정에서 다른 짐승을 죽이는 데 특화한 '전문 사냥꾼'으로 진화했고, 이런 본능이 외부의 존재에게 폭력을 분출하는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일명 '수렵가설'이다.


하지만 야마기와 총장은 수렵가설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인간과 유사한 사회를 이루고 사는 다른 영장류를 40여 년간 관찰한 결과, 사람의 폭력성은 본능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발명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현대인은 누가 내 편인지 알 수 없다"…폭력성 부추긴 문명화
문명을 이룬 인간과 달리 영장류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저조한 편이다. / 사진=연합뉴스

문명을 이룬 인간과 달리 영장류의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은 저조한 편이다. /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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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따르면, 무리 생활을 하는 영장류는 일반 포유류보다 폭력으로 인한 사망률이 약 두 배가량 더 높다. 인간의 경우엔 '문명화' 이후로 약 10~20배나 폭증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야마기와 총장은 농사지을 땅을 확보하는 '소유권'의 등장, 서로의 사고를 확산하는 언어의 발명, 이로 인한 문명의 탄생이 인간의 폭력성을 강화했다고 설명한다.


즉, 인간은 정착 생활을 하고 거대한 사회를 이루면서 여러 집단을 만들었고, 각 집단의 마찰이 두드러지자 외부로 향하는 공격성을 강화해 자신을 방어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현대 사회 여러 집단에서 분출되는 폭력성에 관한 힌트가 있다. 야마기와 총장은 "현대인은 복잡한 사회 속에서 누가 우리 편인지 적인지 알 수 없게 됐고, 그런 환경 속에서 우리 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한다.


피아 구분이 어려운 복잡한 사회일수록 사람은 자신에게 낯선 외부인에게 더욱 호전적으로 대하게 된다는 뜻이다. 일부 직장인 사회의 텃세, 학급 내 집단 따돌림,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감 등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야마기와 총장은 "그렇기에 (현대인은) 적의 존재가 확실해지면 폭력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라며 "인간이 만든 공동체가 어떤 존재였는지, 재확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침팬지, 고릴라처럼…인간도 본능적 공감능력 있어
집단생활 속 '니편내편' 찾기…현대인의 병 '폭력' 원본보기 아이콘

문명화된 인간의 폭력성은 어떻게 완화·해소할 수 있을까. 야마기와 총장은 "고릴라, 침팬지, 인간 등 영장류는 문명 이전에 이미 '공감능력'을 갖췄었다"고 강조한다. 문명의 폭발적 확산은 폭력성이 공감능력을 압도하는 결과를 불러 왔지만, 그런데도 인간이 가진 사회성의 원천은 여전히 공감 능력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책에서 "대규모 폭력을 사용한 적 없는 고릴라, 침팬지, 원숭이들이 가르쳐 주고 있다"라며 "흥미롭게도, 사람도 침팬지도 고릴라도 화해할 때 상대를 말없이 마주 바라보는데, 마치 상대의 의도를 헤아리려는 듯 상대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 뒤에야 친화적 행동을 한다"라고 분석한다. 인류가 다른 영장류와 갈라진 지 수백만년이 지났지만, 폭력성을 누그러뜨리고 관계를 봉합하는 방식은 여전히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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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인간의 사회성을 떠받치는 근원적 특징은 공동 육아, 공개적 식생활(함께 먹는 것), 언어를 이용한 대화, 음악을 통한 감정 공유, 대면 커뮤니케이션 등"이라며 "다시 한번 이 공동체로부터 출발해 아래에서부터 짜 올라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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