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이수만이 읊조리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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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 오래전 SM엔터테인먼트를 방문하고 적지 않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용의주도하고 빈틈없는 기획사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부실한 자료에 설명은 미흡했고, 어디서도 궁금한 문제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어떤 문제든 그저 소속 연예인들의 얼굴과 신기술로만 덮고 지나가려는 듯해서 구멍가게 같다는 인상만 받았다. 기획사 중에 제일 체계가 잡혀있다는 SM이 이 모양인 데 다른 곳은 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한 자산운용사 대표에게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도 연예 산업 투자에 관심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기획사가 지배구조나 경영 능력에는 문제가 있는 듯해서 망설이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상장기업으로서 투명성이 의심스럽다는 말이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분쟁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현 경영진과 카카오가 손을 잡았고 이에 맞서 SM의 최대 주주인 이수만이 하이브와 손을 잡고 있다. 최대 주주와 최대 주주가 세운 경영진이 맞서고 있는 모습이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SM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면서 K팝을 키운 선구자다. SM이라는 이름부터 그의 이름 수만에서 따왔다. 2000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를 코스닥에 상장하며 본격적인 연예 기획사 시대를 열었다. 재능있는 스타 지망생을 뽑아 혹독한 훈련을 거쳐 세상에 내놓는 방식은 모든 기획사가 따라 하는 스타 배출과정이 되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전형적인 위험산업으로 성공보다는 실패의 확률이 높다. K팝을 대표하는 프로듀서 이수만의 능력과 성과는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기업 경영은 또 다른 일이다. 기업이 편법으로 대주주에게 돈을 몰아주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언제나 부당한 내부 거래는 기업가치를 훼손한다. 잘 알려져 있듯 SM은 이수만의 개인회사와 별도의 프로듀싱 계약을 하고 매출의 최대 6%를 지급했다. 최근 7년간 지급한 금액만 1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2년 전, SM은 네이버와 CJ ENM, 카카오와 각각 인수 협상을 시작했었다. 협상이 모두 결렬된 배경에는 기존의 계약을 유지하려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개인적 요구가 있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도 자업자득의 결과다. 사실 이수만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는 오래전부터 돌아다녔다.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얘기를 하는 사람도 여럿 보았다. 이수만과 하이브도 성명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 선진화를 약속하고 있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다. 이수만은 SM을 만들고 키워 온 사람이다. 하지만 하이브든 카카오든 인수가 끝나면 그도 떠나게 된다. 그가 없어도 회사는 돌아가야 한다. 헨리 포드가 없는 포드자동차가, 월트 디즈니가 없는 디즈니프로덕션이,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이 그랬듯이 말이다. 그가 없으면 SM의 고유한 음악과 색깔에도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 변화를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는 일은 남은 사람들이 감당할 몫이다.


가수로서 이수만의 대표곡은 1977년에 내놓은 ’행복‘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모든 것을 /못 본 척 눈감으며 외면하고/지나간 날들을 가난이라 여기며/행복을 그리며 오늘도 보낸다" 눈웃음을 지으며 절제된 비음으로 '행복'을 노래했던 가수 이수만은 6년이 지난 1983년에는 강한 전자음을 깔고 절규하듯 부르는 '모든 것 끝난 뒤'를 내놓았다. "누구를 기다리나/ 무엇을 바라는가/ 모든 것 끝난 뒤" 궁금하다. 그는 지금 1977년의 이수만보다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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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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