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남한 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남한 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저자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다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군인 아버지가 ‘북괴’에 의해 ‘비상이 걸려’ 귀가가 늦어지는 상황에 익숙했고, 북조선을 안보상 적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선입견을 가지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기조에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성세대의 대북관에 의구심을 갖고 객관적 관점에서 분석하려 노력했다. 나름 선입견을 없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탈북 여성들을 직접 대면하고 나서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동안 그들을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닌 ‘북조선’이라는 분단 반대편의 존재로 단순화해 감각했다"고 고백한다. 고통에 매몰된 존재로 인식했으나, 실은 힘겨운 조건 속에서도 희로애락을 느끼는 다양한 얼굴을 지녔으며 전쟁과 분단의 역사적 맥락에 규정된 제한된 삶 속에서도 적극적인 행위로 주체성을 발현하면서 나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북조선을 향한 우리 사회의 무지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 이 책을 냈다고 말한다. 그간 만났던 150여명의 탈북 여성 이야기를 ‘산문’ 형식으로 기술했다. 기존 사회과학적 글쓰기에서 탈피해 북조선 여성들의 역동적인 삶의 궤적에 좀 더 가까이 가닿기 위함이다. 특별히 북조선 여성들을 ‘연구 대상화’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연구자와 연구 대상이란 위계를 해체한 상태에서 그들의 삶을 풀어냈다. 이를 통해 분단을 매개로 작동하는 국가와 가부장제의 위력을 일상적으로 감내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조언한다. 그런 그에게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창비)의 이야기를 물었다.
-북한과 탈북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박사 공부를 마치고 여러 사정으로 4년 넘게 연구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연구로 돌아왔을 때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를 감안해 새로운 연구 주제를 찾아야 했다. 그때 눈에 띈 게 북조선에서 오신 분들의 이동과 이주 문제였다. 당시만 해도 일 년에 남한에 입국하는 북조선 분들이 2000명을 훌쩍 넘을 때였다. 그들의 삶을 통하면 분단, 탈냉전, 세계화 등이 한반도 맥락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겠다 싶었다. 본격 연구에 앞서 조중접경지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 접한 북조선과 북조선 사람들이 제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내용이 실은 내 삶과 깊게 연관돼 있었다.
-이후 150여명의 탈북 여성을 만나 인터뷰했다. 어떤 계기로, 어떻게 만났나.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조중 접경지역에 머무는 북조선 여성들부터 남한으로 이주해 정착한 여성들까지 다양하게 만났다. 남한에 정착하게 되면 지역 하나센터의 관리를 받는데,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만나기도 했다. 초국적 이동을 감행한 해외 체류 여성들과 만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2014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하면서 좀 더 일상적인 수준에서 북조선 출신 분들을 만났다. 저희 학교에서 일하시는 분도 많아 그분들의 소개로 최근에 탈북하신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만남에 있어 특별히 초점을 맞춘 부분 있나.
▲연구 질문은 북조선 여성들의 젠더화된 이주, 그 과정에서 국가와 역사가 어떤 식으로 개입했는지를 살피는 것이었다. 북조선 여성의 경우 북조선에서부터 가부장제와 국가 권력으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이런 열악한 상황이 역설적으로 적극적인 이동을 추동하기도 했다. 다만 주요 이주 동기는 가족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었기에 타국에 정착한 이후에도 가부장제 속 어머니 역할에 상당히 골몰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직접 마주한 탈북민들은 어떠했나.
▲북조선 여성들을 처음 만났을 즈음 당시 학계 담론이나 사회적 여론은 그들을 국가 권력의 피해자로 조명했다. 그래서인지 전 북조선 여성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힘겨운 삶을 겨우 이끌어가는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마주한 그들은 너무나 다양한 얼굴로 다가왔다. 어떤 분은 힘겨운 과정을 겪은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낙천적이고 편안한 얼굴이었다. 백명이 넘는 사람 중 같은 얼굴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점은 이 책에서 꼭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희생’과 같은 비슷한 면모를 공유하지만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모두가 제각각이었다.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다면적인 모습에 우리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탈북 여성이 있는지.
▲여러 해에 걸쳐 만난 분 중 중국에서 만난 정희 할머니가 있다. 중국 정착 초기에 뵀던 분이라 변화 모습을 비교할 수 있었는데, 처음에는 북조선으로 돌아가려는 의지가 아주 강하셨다.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려고 중국에 온 것이고, 빨리 돈을 벌어 돌아가려고 하셨다. 하지만 몇 년 뒤에 만난 할머니는 몸도 마음도 몹시 지쳐 보이셨다. 자식 곁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흐릿해지신듯했으나 그 와중에도 자식들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손주들 생계까지 걱정하는 끝 없는 ‘어머니 노릇’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최근에 중국에 가지 못했는데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 걱정이 된다.
-남한 정착 성공 스토리 안에서 여성 이야기는 드문 듯하다.
▲드물긴 하지만 성공한 사업가 면모를 보이는 몇몇 북조선 여성들이 있다. 의사나 전문직으로 활동하는 분도 있다. 정치 활동을 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분도 계시고. 하지만 남한에 입국한 북조선 출신자 중 70%가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활발한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대부분의 여성은 생활을 근근이 이어가면서 살거나 자녀 부양에 애쓰고 있다. 사회나 가족 지원이 제한된 북조선 여성들의 경우 결혼, 출산, 양육 등의 문제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조선 여성들의 사회 활동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지난해에는 성공적인 국내 정착 사례로 소개됐던 탈북 여성의 고독사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탈북 여성이 상당한 고립감에 노출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고통과 곤란함을 사회나 주변에서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탈북 여성의 고독사 사건은 단순히 ‘탈북 여성’의 문제로 여기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복지 체계 문제점이나 소외 계층에 관한 문제와 연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첨예화되고 사회적 갈등이 확대하면서 취약 계층이 느끼는 고립감과 경제적 어려움은 점점 심화하고 있다. 1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고, 고령층이나 장년층 고립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고독사 문제는 지속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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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탈북했지만, 이후 삶이 기대와 같지 않은 경우가 많은 듯하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듯 하다’며 두려움을 표하는가 하면 누군가는 재입북을 택하기도 한다.
▲자유를 누릴 수 있고, 물질적으로 극한의 고통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한국에서의 삶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현하는 분들이 계시다. 하지만 이런 분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만을 표출하시곤 한다. 한국 사회가 너무나 경쟁적이어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북조선보다 훨씬 힘겨운 노동을 해야 하거나, 믿었던 직장 동료와 불화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대적 박탈감이나 사회문화적 배제와 차별의 경험은 그들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안긴다. 한국 사회 일원으로 나름의 정체성을 펼치면서 살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그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 안착이 매우 중요하다.
-탈북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제도적 수준에서는 이미 상당한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더불어 산다는 의식은 아직 더 갖출 필요가 있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등장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는 그들을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구별 지을 게 아니라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웃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들을 향한 ‘도움’도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베푸는 시혜의 성격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이번 책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었던 점도 그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이제는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
-탈북 여성들과 교류 전에 알아두면 도움 되는 내용이 있을까.
▲남북 여성이 경험한 세계가 상당한 특징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분단 체제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그녀들의 삶은 예상과 달리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의 삶을 제약했던 전쟁과 분단, 냉전의 흔적은 저의 삶 속에도 존재하는 부분이다. 오히려 그들의 삶은 제 삶을 반추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행위 주체적 힘의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의 다면적 삶에 다가감으로써 남과 북이 연결돼 있다는 걸 이해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 요구된다.
▶저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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