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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목숨 구걸말고 죽으라' 나문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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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뮤지컬 영화 '영웅' 180만 돌파
안중근 의사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役

대의명분을 품고 거사를 치러낸 아들.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받아놓은 자식에게 세상 어떤 어머니가 "목숨을 구걸 말고 그냥 죽으라"고 할 수 있을까. 수천번을 되뇌어봐도 감히 못 할 말, 짐작도 못 할 감정이다. 조마리아(1862~1927) 여사는 일제 침략에 맞서 1909년 하얼빈역에서 조선총독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1879~1910) 의사의 어머니다. 안중근은 하늘을 향해 '꼬레아 우라'(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세 번 외친 후 순순히 체포됐고, 뤼순(旅順) 감옥에 수감돼 심문과 재판을 받았다.


조마리아 여사는 하얼빈 의거로 감옥에 갇힌 아들 안중근에게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는 뜻을 전한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다. 안태훈과의 사이에 안중근, 안성녀(1881~1954), 안정근(1884~1949), 안공근(1889~1939) 등 3남 1녀를 두었고, 이들 모두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친 장한 어머니였다.

배우 나문희. 사진=CJ ENM 제공

배우 나문희.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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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하얼빈 의거 113주년이던 지난해 12월 21일 영화 '영웅'이 개봉했다. 1909년 10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의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다. '해운대'(2009)·'국제시장'(2014)으로 쌍천만 대업을 이룬 윤제균 감독이 2009년 초연돼 14년간 관객과 만나온 동명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겼다.


영화에서 조마리아 여사를 연기한 배우 나문희(81)를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엄청난 인물이다. 어떻게 자기 자식을 희생시킬 수 있었을까.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의병 대장으로 일본인들 앞에서 굴하지 않고, 안 그러면 죽일 게 뻔한데 끝까지. 그런 아들한테 조마리아 여사님은 굴하지 말고 큰 뜻대로 하라고 하죠. 어미의 속이 어땠을까요. 대단하죠. 엄마한테 아들은 열 살이든 쉰살이든 아이잖아요. 어떻게 내 자식한테 그럴 수 있을까, 그 마음을 표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더 했겠죠. 하지만 여전히 공감하기는 힘들어요. 기도를 많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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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은 망설임 없이 나문희에게 조마리아 여사 역을 제안했다. 이를 언급하자 나문희는 "영화 '하모니'(2010)를 제작한 윤 감독과 인연이 있었다. 감독이 연출한 '해운대'·'국제시장'도 재미있게 봐서 '영웅'도 기대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믿었으니까 시켰겠거니 하고 그냥 했다"며 웃었다. 그는 "어머니가 102살이 돌아가셨는데, 윤 감독이 빈소에 왔다. 나와 만나지는 못했지만, 큰딸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다 가셨다고 들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조마리아가 아들의 수의를 지으면서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를 언급하자 나문희는 "기가 막혔다. 떠올리니 지금도 먹먹해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생각하니 기가 차고 내 안에서 경련이 일었다. 표현한 슬픔보다 더 매우 슬펐다"고 했다.


나문희는 최근 '영웅' 시사회에 프로골퍼인 손주를 초청했다. 손주는 조마리아가 수의를 짓는 장면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훔쳤다. 영화를 본 손주는 나문희가 끓여준 떡국을 먹으며 "이거 나문희가 끓여주는 떡국이야?"라고 물으며 좋아했다. 뮤지컬 넘버를 연습하는 데 도움을 준 건 피아노를 전공한 큰 딸이었다. 나문희에게 또 다른 동력은 가족이다.


"영감(남편)이 철없이 (노래)레슨을 받으려고 해요. 가끔 큰 애한테 둘이서 레슨을 받기도 해요. 당연히 돈도 줘야죠. 내가 버니까 줄 수 있는 거지만. 딸이 '영웅' 스크롤에 '나문희 노래 선생님'으로 이름이 올라있는 걸 보며 좋아하더라고요. 도움이 됐다니 저도 기분 좋죠."


배우 나문희. 사진=CJ ENM

배우 나문희. 사진=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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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MBC 라디오 1기로 데뷔한 나문희는 61년간 연기자로서 외길을 걸었다. 이를 언급하자 "좋아하는 일을 해서"라고 답했다. 이어 "60년간 좋아하는 일을 하면 생각 안 해도 솔솔 나온다"며 웃었다. 최근에는 숏폼(Short-form) 비디오 형식 콘텐츠 플랫폼인 '틱톡'을 시작했다는 그는 "지난해 10월4일부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촬영을 준비한다. 세상 사람들과 만날 수 있어 재미있다. 수익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움직인다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젊은 시청자는 나문희를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기억한다. 당시 분노에 차 '호박고구마'를 외치던 모습은 많은 대중에게 유쾌하게 기억되고 있다. 그는 "틱톡 제작진도 만날 고구마를 가져온다"며 웃었다.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처럼 가벼운 극이 많아지길 바란다. 할머니라고 꼭 무거워야 할 필요가 있냐.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하면서 재미있게 놀다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할머니들도 조금 더 일하면 좋겠다. 주변에서 손주도 보시고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다. 집에만 계시지 말고 적게라도 일하면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분들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여섯번이나 강산이 바뀌었다. 나문희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버스를 타고 대중목욕탕도 즐긴다고 했다. 자신을 '할머니'라고 말하면서 어떤 질문에도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낙천적인 성정이 오래 배우 생활을 유지하게 한 비결로 다가온다.


"내 것은 쩔쩔매면서 살아요. 사회생활을 할 때 어지간한 건 잘 참아요. 참는 수밖에 없잖아요.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싶을 때, 입으면 참 좋겠다 싶지만, 막상 몸에 걸치면 안 맞을 때가 있죠. 운동화까지 챙겨 신고 거울을 보면 그래도 그럴듯하잖아요. 연기도 마찬가지예요. 대본을 받고는 엄두가 안 나지만 자꾸 들여다보고 반복해서 하다 보면 괜찮다 싶죠. 어떨 땐 구박도 많이 받지만, 이겨내어 가야지요. 충분히 잘했다는 생각은 안 하고 욕심도 내지 말고. 내 몫을 잘 찾아서 하자는 마음입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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