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톡]"반도체 생산만 보지 말고 설계도 봐야"…美 불안감 흘러나온 이유
[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미국은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오랫동안 주도권을 보유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글로벌 경쟁자들의 막대한 투자에 미국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줄어들 겁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맷 존슨 실리콘랩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말 이같이 말했다. SIA가 보스턴컨설팅그룹(BCG)과 함께 작성한 ‘반도체 설계 리더십에 대한 도전과제’ 보고서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반도체 설계 부문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의 핵심으로 ‘생산시설 확보’를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반도체 업계는 왜 설계 부문 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했을까.
◇美·中 점유율 격차, 15년 만에 46→13%로
반도체 생산은 크게 설계, 제조, 패키징·테스트, 판매·유통 과정을 거친다. 반도체 기업 중에서는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업체, 제조만 전문으로 하는 파운드리, 모든 역할을 수행하는 종합반도체회사(IDM)가 있다. 반도체 공급망은 어느 한 부문에서만 강점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전 과정을 보유해야만 완전히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반도체 생산 과정 중에서도 특히 설계에 강점을 갖고 있다. SIA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글로벌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점유율(매출·본사 위치 기준)은 46%로 가장 많다. 미국 퀄컴, 엔비디아, AMD, 브로드컴 등이 대표적인 팹리스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팹리스 상위 10개 사 중 상위 4개 사가 미국이며, 10개 사 매출액 중 미 4개 사의 점유율은 2분기 기준 75%에 달한다.
그런데 SIA는 향후 설계 부문의 시장 점유율 변화가 심상치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공격적인 점유율 확대가 가장 큰 이유다. SIA와 BCG는 2015년까지만 해도 51% 수준이었던 미국의 점유율이 2025년에는 41%, 2030년에는 36%까지 내려앉을 것으로 봤다. 반면 중국의 점유율이 2015년 5%에서 2025년 16%, 2030년 23%까지 4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관측했다. 2030년에는 중국이 한국도 제치고 2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측했다.
이런 추세 속에 중국과 대만, 일본, 한국까지 포함하면 아시아 지역의 반도체 설계 부문 점유율은 2030년 57%를 기록해, 미국을 제치게 된다. SIA는 "설계 부문의 주도권은 보장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반도체 설계에 40조원 추가 투자해야"
출범 이후 반도체 산업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정작 설계 부문의 경우 손을 놓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지적에 설득력을 더한다.
미 의회는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을 분산시키고 자국에 생산시설을 확보해야 한다며 지난 7월 미국 내 반도체 제조시설 건립 시 세액공제를 포함한 보조금 520억달러(약 69조원)를 투입한다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CSA)’을 통과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TSMC, 삼성전자, 인텔 등 주요 반도체 업체의 제조시설을 유치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이 법안에는 설계 부문에 대한 지원책이 빠졌다. 이에 SIA는 제조시설 투자에만 치우쳐, 설계 부문의 주도권을 아시아에 내어줄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의회에 반도체 설계 부문의 투자 세액 공제가 가능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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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반도체 업계는 미국이 반도체 설계 부문의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200억~300억달러의 반도체 설계 및 연구·개발(R&D)을 위한 연방 정부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에는 반도체 설계 부문에 대한 투자 세액 공제 혜택 150억~200억달러가 포함된다. 또 민간 부문에서도 향후 10년간 4000억~5000억달러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추가 투자가 있어야 반도체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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