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수원, 사외이사 반대에도 '임시 방폐장' 강행
28일 이사회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 안건 상정…사외이사 반대로 통과 미지수
고리·한빛·한울 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통합설계 추진
영구 고준위 방폐물 처리시설 구축은 수십년째 제자리걸음…'임시 방폐장'의 사실상 영구화
[아시아경제 세종=김혜원 기자, 이준형 기자] 한국수력원자력이 사외이사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고리 원자력발전소와 한빛·한울 원전 부지 내에 '임시 방폐장'으로 통하는 건식저장시설 건설을 강행한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수원은 오는 28일 이사회 안건으로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을 상정한다. 당초 한수원은 황주호 신임 사장 취임 후 처음 열린 9월 이사회에서 해당 안건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사외이사 전원이 문제를 제기해 상정하지 못했다. 한 달 만에 다시 열리는 이사회지만 의장을 포함해 비상임이사들이 여전히 반대 의견인 것으로 알려져 표결에 부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수원이 안건 상정한 이번 '고리 기본계획안'은 고리뿐 아니라 한빛·한울 3개 원전본부에 총 2만3239다발의 저장용량을 갖춘 대규모 건식저장시설을 짓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고리 원전의 건식저장시설은 중수로인 월성 원전과 달리 경수로 원전에도 '임시 방폐장'이 처음 들어서는 포문을 여는 격이다.
기본계획안의 세부 항목에는 '고리 원전은 2030년부터, 한빛·한울 원전은 2031년부터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을 운영한다', '다만 사업 예산이 기확보된 고리 원전부터 우선 추진한다. 한빛·한울은 총사업비를 산출한 후에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할 예정이다'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월성 원전은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거쳐 건식저장시설을 쪼개서 지었다면, 고리와 한빛·한울은 건설 초기부터 설계와 인허가, 제작, 운영을 통합하는 방식이다.
한수원 사외이사들은 원전본부별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을 고려하면 건식저장시설 확보가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나, 정부의 영구 방폐장 건립 계획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번 안건을 이사회가 용인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기본계획안에는 추정 사업비로 5776억원을 책정했는데, 여기에는 지역주민의 반발을 잠재울 지원금은 넣지 않았다.
한수원이 이번 이사회에 상정하는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의 핵심은 건식저장시설 신·증설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이다. 기본계획안은 ‘계속운전, 신규 원전 건설, 중간저장시설 운영 지연 시 (비용) 재산출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원전 계속운전 등을 통해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이 늘어나거나 중간저장시설 구축이 늦어질 경우 새로 지은 건식저장시설을 언제든 확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건식저장시설이 사실상 영구처분시설로 활용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 로드맵에 따르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영구처분시설 확보 시점은 2060년이다. 한수원이 고리 원전 건식저장시설을 예정한 대로 2027년 착공해 2030년부터 가동한다면 고준위 방폐물은 최소 30년 동안 건식저장시설에 보관해야 한다. 2031년 가동 예정인 한빛·한울 원전 건식저장시설도 상황은 비슷하다.
‘임시시설’ 불과…영구 고준위 방폐장 확보는 지지부진
문제는 건식저장시설이 원전 가동 후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시설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와 캐니스터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는 용량이 한정된 데다 지상에 노출된 채로 구축돼 저장 방식도 완전하지 않다. 지상 위에 지어진 만큼 지진, 해일 등 자연재해나 군사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사용후핵연료를 완전히 처분하려면 건식저장시설에서 중간저장시설로 옮긴 후 최종적으로 영구처분시설(방폐장)에 저장해야 한다.
최선의 해결책은 방폐장 구축이지만 부지 선정 단계부터 과정이 만만치 않다. 당초 정부는 1980년대부터 방폐장 부지를 찾았지만 지역주민과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혀 최근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에 국내 원자력산업은 ‘1호 원전’인 고리1호기가 1978년 가동한 후 45년 가까이 ’간이 화장실‘ 격인 임시저장시설에 의존해왔다.
정부가 추산한 방폐장 구축 기간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방폐장 확보 절차에 돌입해 영구처분시설을 완공하기까지 최소 37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영구처분시설은 부지 선정(13년), 지하연구시설 건설·실증 연구(14년)를 거쳐 27년 후에나 착공할 수 있다. 다만 방폐장은 지역사회 반발이 거센 사안인 데다 정치적 이벤트 때마다 포퓰리즘과 맞물리면 정부가 13년 이내에 부지 선정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2031년부터 임계점…고육책 꺼냈지만 가시밭길 한수원
한수원은 결국 건식저장시설의 신·증설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고육지책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건식저장시설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당장 2031년부터 원전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긴박함이 작용한 결과다. 실제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부 수조에 습식저장 방식으로 보관 중인 고리 원전과 한빛 원전 포화율은 지난달 말 기준 각각 85.9%, 75.7%로 2031년이면 한계치에 달한다. 바로 이듬해면 한울 원전 포화율(82.%)도 100%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방폐장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매 정권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방폐장 건설을 ‘폭탄 돌리기’ 식으로 회피한 데 따른 제반 비용은 모두 미래 세대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원전 가동률을 높이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한 만큼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은 꾸준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31년으로 예정된 고리·한빛 원전 포화 시점이 예상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수원이 건식저장시설 구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시급한 사안인 건 맞지만 지역주민 등의 공감대 없이 건식저장시설 구축을 강행하면 뒤탈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건식저장시설은 공론화 없이 건설할 수도 있지만 지역주민 반발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한수원 사외이사들이 우려하는 대목도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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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부담은 또 다른 문제다. 한수원은 사용후핵연료를 배출할 때마다 일정 비용의 관리부담금을 내 ‘방사성폐기물관리기금’을 조성한다. 한수원에 최근 10년간 부과된 사용후핵연료 관리부담금은 6조1300억원 규모로 향후 방폐장 건설 등에 활용된다. 기금 목표는 방폐물 관리에 있지만 수조원에 달하는 건식저장시설 건설비와 지역 보상금은 모두 한수원 자체 예산으로 조달해야 한다. 한수원 사외이사의 요청으로 최근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법무부 산하 정부법무공단은 건식저장시설 건설비가 ‘이중 부담’에 해당할 수는 있다는 의견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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