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대란' 본격화...제지업계 "정부, 비축량 더 늘려야"
경기침체로 폐지수요 급감 "쌓아둘 곳이 없다"
환경부 1만9000t 비축…제지업계 "정부 직접 매입하고, 비축량도 늘려야"
하루에 두 차례 압축상에 폐지를 실어 보냈는데 지난 주부터 한 차례만 보내면서 B자원 부지 안에 폐지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 B자원 대표 최모씨가 쌓여만 가는 폐지 더미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종화 기자]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쌓아둘 곳이 없다는데 방법이 없더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폐지(종이자원)를 모아 압축상에 공급하는 B자원 대표 최모씨는 쌓여가는 폐지를 보며 한숨짓고 있다. B자원은 한 번에 5t씩, 하루에 두 번 남양주시에 있는 압축장으로 폐지를 실어 나르는데, 지난주부터 압축상에서 "하루에 한 차만 받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당 140~150원씩 하던 폐지 가격이 ㎏당 70~80원으로 떨어졌다. 한 차라도 더 실어 보내야 벌이가 되지만, 오히려 한 차를 덜 보내게 됐으니 속이 탄다.
최씨는 "매일 꾸준히 폐지를 가져오는 노인들에는 생계가 걸린 문제라 안 받을 수도 없고 골치"라면서 "압축상도 이물질 함유 여부를 더 까다롭게 따져 중간 수거상인 우리는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고물상인 B자원은 ㎏당 60원에 노인들이 수거해온 폐지를 사서 ㎏당 70~80원을 받고 압축상에 넘긴다. 압축상은 폐지를 종이 원료로 가공할 수 있게 압축해서 제지사로 넘기는데, 제지사는 "더 적재할 공간이 없다"면서 폐지 반입을 꺼리는 상황이다.
폐지대란 본격화…경기침체로 폐지수요 급감 탓
폐지대란이 본격화되고 있다. 폐지가 남아돌기 때문이다. 세계적 경기침체로 종이 수요가 줄고 생산량도 감소하면서 종이의 원료인 폐지 수요가 급감한 것이 원인이다.
25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기준 제지사에 쌓인 폐지 재고는 약 14만8000t으로 7만~8만t가량이던 평소 재고의 2배로 늘어났다. 제지사가 재고 소화를 못 하면서 압축상에도 5만8000t가량의 재고가 쌓여 있다.
지난달 기준 전국 평균 폐지 가격은 신문지가 1㎏당 135.2원으로 지난해 9월(149.9원)보다 9.8%, 골판지가 107.8원으로 지난해 9월(147.9원)보다 27.1% 떨어졌다. 실제 수거상과 수거 노인들의 수입은 이보다 더 적다.
서울 용산 이태원1, 2동 일대에서 트럭을 이용해 폐지를 수거하는 이모씨(72)는 "올봄에만 해도 ㎏당 140원을 받았는데 요즘은 ㎏당 60원에도 받으려는 고물상이 별로 없다"면서 "차로 돌지 않으면 금방 쌓이는 데다 생계를 위해서라도 매일 수거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폐지가 남아도는 데다 가격마저 내려가면, 이윤이 남지 않기 때문에 동네 고물상에서 수거해온 폐지를 받지 않게 된다. 수거해 팔 곳이 없어지면 수거 노인들은 생계를 위협받으면서도 폐지를 더 줍지 않게 되고, 골목이나 길거리에 그대로 남는 것이다.
환경부 1만9000t 비축…제지업계 "비축량 더 늘려야"
이처럼 폐지가 남아돌자 환경부는 한솔제지 등 주요 제지사 5곳에 1만9000t의 폐지 선매입을 요청했다. 제지사들이 매입한 폐지는 환경부가 운송비를 지원, 전국 6곳의 공공 비축시설로 옮겨 내년 6월까지 9개월간 보관해줄 방침이다.
제지사 공장 부지의 야적 공간이 이미 포화상태이고, 주로 그린벨트 지역을 사용하는 압축장의 야적장도 협소한 데다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어 정부 시설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환경부는 이런 수거 적체 상황 해소를 위해 기존 경기 안성과 충북 청주, 전북 정읍, 대구 달서 등 4곳의 공공비축 시설에 이어 올해 충북 음성과 경기 양주 두 곳에 추가로 비축시설을 확충했다.
그러나 제지업계는 환경부가 1만9000t 비축이라는 단기처방에서 벗어나 경기회복 외 대안이 없는 만큼 시장에 보다 과감한 시그널을 보내주길 기대하고 있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재고가 20만t 넘게 쌓였는데, 고작 1만9000t을 선매입하면 보관해주겠다는 것은 생색내기일 뿐"이라면서 "농림축산식품부가 정부미를 비축하는 것처럼 폐지가 남아도는 이 시기에 환경부가 더 많은 양을 비축했다가 어려울 때 제공해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우리나라는 산림자원이 없어 주로 재활용 기술을 이용한 재활용 종이 산업이 제지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폐지회수율은 미국 65%, 중국 50%에 그쳤지만, 우리나라는 87.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전체 종이생산량 1160만t 가운데 80%가량이 폐지로 만들어질 정도로 폐지는 국내 제지산업의 필수 자원이다. 제지사에 선매입을 요청하기보다 정부가 직접 매입에 나서고, 비축량도 더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월 150만원 견디느니, 美 가서 5억 벌죠" 서울대...
이에 대해 김상훈 환경부 생활폐기물과장은 "압축상이 수거거부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압축상의 신청을 받아 재고 5만8000t 중 1만9000t가량을 우선 줄여주기 위한 조치다. 위기 상황임은 감지하고 있지만, 일촉즉발까지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비축량은 추가로 더 늘릴 수도 있다. 수거 거부 사태까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