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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4일제 도입' 英보다 美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찐비트]

최종수정 2022.09.24 10:00 기사입력 2022.09.24 10:00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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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미국은 영국에 비해 훨씬 일을 중심으로 조직화한 문화였어요. 내가 (영국에서) 자랄 땐 장시간 노동에 대한 영웅주의는 없었습니다."


미국 경영대학원(MBA)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매튜 비드웰 교수는 1990년대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처음 건너왔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지난달 말 와튼스쿨이 공개한 '미국이 주 4일 근무제를 수용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글에서 비드웰 교수는 휴가도 얼마 가지 않는 '워커홀릭 국가'라고 미국을 표현했어요. 그는 "(주 4일 근무제가 미국의 표준이 되는 일이) 조만간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비드웰 교수의 와튼스쿨 동료인 린지 카메론 교수와 마이클 파크 교수도 동의했는데요. 카메론 교수는 "솔직하게 (미국의) 고용주들이 5일 동안 해왔던 업무를 4일 만에 끝낼 수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간적 유연성보다는 공간적 유연성을 다루는 일이 더 쉽다"고 평가했어요. 파크 교수는 옛 업무 방식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결국은 돈을 벌어야 하는 만큼 그 속에서 직원들이 균형을 찾는다"면서 미국 내 주 4일 근무제 도입 확산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 노동시간 1년에 300시간 차이 나는 英과 美

와튼스쿨이 교수 3인이 이 시점에 회의적인 시각을 내놓은 이유는 바로 다음 달부터 미국과 캐나다에서 주 4일 근무제 실험이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비영리단체 포데이위크글로벌이 임금 100%를 유지하면서 근무시간은 80% 줄이고 생산성은 이전과 동일하게 유지하겠다는 원칙을 갖고 진행하는 실험이죠. 지난 4월부터 약 40개 기업이 6개월간 1차 실험을 진행했는데, 추가로 미국과 캐나다의 20개 기업이 다음 달부터 실험에 들어가는 겁니다. 이 실험은 현재 영국에서도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70여개 기업, 3300명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세계 최대 주 4일 근무제 실험'이라고 평가를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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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시간이나 출근지 등 업무 환경의 변화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죠. 국가나 지역에 따라 인식·문화 차이가 확연하게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미국의 실험이 아직 진행 중이어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기다려 봐야 하는데요. 주 4일 근무제 도입에 두 국가의 근로 환경 차이가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


두 국가의 근무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지난해 미국은 인당 총 1791시간, 영국은 1497시간 일을 했다고 해요.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를 조건으로 환산해보면 미국인이 영국인에 비해 지난해 7주 이상 더 일했다는 것이죠. 유급휴가의 경우 영국은 정규직 직원에게 30일 가까이 의무로 제공되지만, 미국은 의무 유급휴가가 없다고 합니다. 영국은 하루 6시간 이상 근무할 경우 근무일 중 20분의 휴식이 의무로 보장되어야 하지만 미국은 별도로 이를 규정하진 않는다고 해요.


미 매체 악시오스는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철도 파업에서 참가자들이 효율성을 극대화해 직원들의 신체·정신적 건강이 한계에 부딪혔다면서 '유급병가를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무급 병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합의를 맺었다고 해요. 유럽이나 영국과 비교해 근무 시간이 긴 미국에서 '조용한 그만두기(Quiet quitting)'가 유행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죠. 비드웰 교수가 미국의 주 4일 근무제 확산에 회의적인 이유도 여기서 시작됐을 것으로 보입니다.

◆ 1960년대만 해도 유럽이 미국보다 일 더 했다?

월가는 미국에서도 악덕 고용주로 손꼽히죠. 이러한 월가에서도 업무 환경 차이가 변화를 만들고 있는데요.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4일(현지시간) 유럽 은행들이 '원격근무 허용' 카드로 월가에서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했어요. 대표적인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JP모건 등이 직원들에게 사무실 복귀를 강하게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UBS, 도이체방크 등 유럽계 은행들이 유연성을 제공하며 인재를 빼 오고 있다는 것이죠. 유럽과 미국의 업무 정책 차이가 월가의 하이브리드 근무 실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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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이 미국과 비교해 근무시간이 더 길었다는 거예요.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 등이 전미경제연구소(NBER) 연간보고서에 쓴 2005년 '미국과 유럽의 일과 레저 : 왜 이렇게 다른가'라는 논문을 보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이 미국보다 토요일에 근무하는 게 더 일상적이고, 여름휴가를 장기간 보내는 것도 미국이 더 수월했다고 해요. 글레이저 교수 등은 "오늘날 업무 패턴의 차이가 유럽과 미국의 생활 방식에서 영원한 측면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차이는 현대적인 것"이라고 평가했어요.

최근 50년 새 미국에서 베이비붐 세대가 일을 삶의 중심에 두고 여가를 줄이는 것을 일종의 미덕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는데요. 실비아 벨레자 컬럼비아대 경영대 교수 등이 2017년 쓴 한 마케팅 논문을 보면 바쁘게 일하며 여가시간이 부족한 사람을 보고 미국에서는 부자라고 인식하는 반면 이탈리아에서는 가난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해요. 미국이 유럽과 비교해 노력을 통해 얻은 경제적 지위를 더 가치 있게 평가한다는 것이 그 이유로 분석됐어요.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의 미래'를 둘러싼 실험과 논의는 이러한 인식과 문화를 배제하고 진행할 순 없죠. 한 시대를 함께 살며 인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직장인들이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미국과 영국에서 진행되는 주 4일 근무제 실험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교훈을 줄까요?


편집자주[찐비트]는 ‘정현진의 비즈니스트렌드’이자 ‘진짜 비즈니스트렌드’의 줄임말로 조직문화, 인사제도와 같은 기업 경영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코너입니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외신과 해외 주요 기관들의 분석 등을 토대로 신선하고 차별화된 정보와 시각을 전달드리겠습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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