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준칙 예외사유 두루뭉술에, 정부가 적용 면제 여부 판단
'10년 동안 아홉 해' 추경 상시화에 벌써부터 우려
"경제위기 판단 기준 수치화 또는 독립재정委 설치 필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 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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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세종=권해영 기자] 정부가 나라살림을 강력히 통제하는 새 재정준칙을 내놨지만, 위기 상황 발생시 준칙 적용 예외 여부를 자체 판단하기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기존안 보다 엄격한 재정준칙을 수립해 재정 건전성 강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재정준칙을 법제화해도 준칙 적용 '셀프 면제'가 가능해 실효성을 놓고 벌써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1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향후 재정준칙 예외사유 발생시 준칙 적용 면제 여부를 독립된 재정위원회가 아닌 정부가 자체 판단할 예정이다. 판단 주체는 재정당국 또는 부총리가 위원장인 재정정책자문위원회와 유사한 내부 자문기구가 될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부는 전쟁·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이 발생하면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하기로 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요건과 동일하다. 전쟁이나 코로나19와 같은 재해에 대한 판단은 비교적 쉽지만 경제위기는 다르다.


정부는 경기침체, 대량실업 기준과 관련해 실질적인 수치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향후 자의적으로 재정준칙 면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예컨대 경기침체 기준은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대량실업 기준은 '실업률 ○% 이상' 등과 같은 구체적인 수치를 담지 않은 것이다.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재정의 역할이 필요한 만큼 운신의 폭을 열어둔 측면이 크지만, 뒤집어 말하면 정부 판단에 따라 언제든 경제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유럽 등 주요국이 독립재정위원회를 두고 재정준칙 적용 면제 여부를 판단하는 전 세계적 추세와도 맞지 않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가 재정준칙 준수 예외 요건을 임의로 판단하는 것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다"며 "정부가 준칙 예외 요건을 빈번하게 인정할 경우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신중하게 판단해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정준칙이 법제화 되면 시행령을 통해 경제위기 판단 기준을 수치로 명시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 재정준칙 '셀프 면제' 가능…법제화돼도 실효성 우려 원본보기 아이콘


정부의 강력한 재정준칙 도입 의지에도 불구하고 일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지금까지 정부가 '재정중독'에 빠진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 왔기 때문이다. 이전 문재인 정부는 총 10차례에 걸쳐 150조원의 추경을 실시했고, 현 정부는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해 출범 직후 62조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을 단행했다.


아울러 지난 10년 동안 추경이 편성되지 않은 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추경이 상시화 됐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는 재정준칙 예외사유를 추경 편성 요건과 동일하게 규정했는데 이는 추경 편성시 준칙 적용이 면제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 간 정부는 2014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9개 연도에 걸쳐 모두 추경을 실시했다. 문 정부의 경우 코로나 이전부터 복지 지출을 늘려 온 데다 코로나 대응,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등에 나서며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해 조달한 재원으로 돈을 풀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역대 추경 편성 사례를 돌아보면 재정준칙이 법제화돼도 유명무실해질 우려가 있다"며 "준칙 예외조항 발동 요건을 엄격하게 세워야 제도를 도입하는 의미가 있다"고 꼬집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재정준칙을 기존안 대비 단순화하고, 예외조항 발동 및 회복력 등을 엄격하게 규정해 전반적으로 준수 기준을 강화했다"며 "세계잉여금의 국가채무 상환 비율도 종전 30%에서 50%로 높여 향후 추경을 편성해도 가용 재원은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정 건전성 강화를 위한 정부의 재정준칙 도입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재정준칙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독립된 재정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독립재정위원회로 인정하는 국회예산정책처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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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영국 등 유럽은 재무부와는 별도의 기구인 독립재정위원회가 경제전망을 하고 경제위기, 재정준칙 적용 면제 여부를 판단한다"며 "우리도 독립재정위원회를 설치해 경제위기 및 추경 편성 여부를 판단토록 한 뒤 국회 승인을 받는 식으로 재정준칙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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