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는 한 세대의 문화 담겨
쓰는 말 통해 그들을 이해해야

[시사컬처] ‘어쩌라고’부터 ‘느슨한 연결’까지
AD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 중학생들과 몇 주 동안 글쓰기 수업을 했다. 글 쓰는 데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함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글쓰기를 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들에게 낸 첫 번째 과제는 ‘자신이 자주 쓰는 언어에 대해 쓰기’였다. 같은 대상을 두고 비슷한 감정으로 문장을 쓰더라도 저마다 사용하는 부사가, 명사가, 조사의 위치가, 띄어쓰기가 모두 다르다. 결국 자신도 모르는 그 언어의 습관이 그 사람을 말해주기 마련이다.


고민하던 한 학생은 자신이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어쩌라고’라고 했다. 친구들과 말하다가도 몇 번이나 그 말을 하게 된다고, 언제 사용하는 것이냐고 묻자 더 이상 말을 이어가고 싶지 않을 때 그렇게 한다고 덧붙였다. 그 용례를 떠올려 보니까 은근히 화가 나는, 그들의 언어로 말하자면 ‘킹받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 들어보는 말도 아니다.

나의 9살 아이는 나와 이야기하다가 말문이 막히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 뭐, 어쩔TV"

"......"

유튜브라든가 인터넷 밈으로 많이 쓰이는 것이다. ‘어쩌라고’라는 말에 TV라는, 유튜브 채널들이 다 가져다 붙이는 접미사를 사용해 만들어낸 신조어 같은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잘 유지하는 나와 나이가 같은 유튜버가 많이 이용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중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던 나의 친구도 나에게 말했다.


"안물안궁."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는 뜻이다. 내가 그런 건 어디서 배워왔느냐고 묻자 중학생들이 많이 써서 자신도 많이 쓰게 됐다고 답했다.


어쩌라고, 어쩔TV, 안물안궁, 이러한 말들은 잘 이해하기 어렵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것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이건 한 세대가 가지게 된 언어의 문화이기도 하다. 단순히 생소하고 장난스러워 보인다고 해서 그 본질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자주 쓰는 말에서부터 그들을 이해해 나가야 한다.


사실 여기에는 맥락 없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말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하다. 중학생을 비롯해 청소년 세대는, 그리고 Z세대라고 할 만한 20대들은 어디서든 발화할 기회가 별로 없고 자신이 원하는 말을 선택해 듣기도 어렵다. 나의 수업을 듣는 중학생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남자 애들이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데 쓸데없이 이상한 말을 하면 짜증나잖아요. 어쩌라고, 라는 말을 하게 돼요."


이들이 이러한 말을 쓰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TMI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다. Too much information이다. "그거 TMI입니다"라고 하면, "저에게 그런 정보까지는 필요 없습니다"라는 뜻이 된다. 우리도 언젠가부터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나이, 학교, 이름 같은 것을 밝히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기성세대는 이것을 느슨한 연결이라고 애써 순화하는 중이다. 사실 이것은 안물안궁이라는 말을 쓰던 청소년들이 사회로 나가면서부터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해도 될 만하다. 이러한 문화는 그 다음 세대들이 출현하며 더 공고해지거나 혹은 다른 지점으로 또 훌쩍 갈 것이다. 새로운 종의 출현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들과의 대화는 나도 어렵고 계속 단절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자 한다.


우선은 나에게 "어쩔TV"라고 하는 아이에게 "저쩔TV"라고 받아주기는 했는데, 그 이후 그는 그 말을 잘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정말 어쩌라고" 하고 말하고픈 심정이다.

AD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