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몇 년 전 만나 지금도 가까운 한 여성 임원이 있다. 첫 만남에서 그분은 내게 성공한 여성 임원들은 어떻게 커리어를 관리하는지 질문했다. 그동안 만났던 많은 대기업 임원, 사외이사 후보자들을 떠올렸다. 대부분 남성이었다. 그렇게 많은 채용건을 진행하면서도 기억에 남는 여성 임원이 많지 않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결국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5년이 지난 올해 초, 그 분에게 이번에는 필자가 먼저 질문했다. 현재 롤모델이 누구인지, 누가 여성 멘토인지 물었다. 그 분은 여성 멘토, 롤모델을 결국 찾지 못했고 오히려 본인이 다른 여성 리더들의 레퍼런스가 돼 주고 싶다며 새로운 숙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답변이 어딘지 씁쓸해 보였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매년 ‘세계 여성의 날(3월8일)’을 기념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8개 중 29개 나라를 대상으로 유리천장지수(The glass-ceiling index)를 발표한다. 이코노미스트가 2013년 이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기업내 여성 관리직 및 임원 비율, 남녀 육아휴직 현황, 성별 임금 격차 등 10개 항목의 각 나라 현황을 종합해 산출하는 이 조사에서 한국은 10년 연속 최하위다. 올해도 최하위였다. 이 정도면 한국 여성들은 ‘유리천장’이 아니라 ‘방탄유리천장’ 아래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상황이 나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불면서 여성 임원 확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유니코써치에서 조사한 결과 올해 1분기 기준 100대 기업 여성 임원은 399명으로 전체 임원 중 처음으로 5%를 넘어섰다(사외이사는 조사에서 제외, 오너가는 포함). 작년 322명과 비교해 1년 사이 77명(23.9%)이나 증가했다. 괄목할 만한 성장이지만 전체 임원 7157명 중 여성 임원 399명은 아직 미미한 숫자다. 국내 대기업 유리천장은 여전히 견고하다.
심지어 여성 임원 399명 중 이사회 멤버로 활약 중인 여성 임원은 단 5명이었다.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을 비롯해 네이버 최수연 대표이사 및 채선주 대외/ESG 정책대표, CJ 제일제당 김소영 사내이사, 대상 임상민 전무가 이들 그룹에 포함됐다. 오너가를 제외하면 100대 기업 중 대표이사를 포함해 사장급 이상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임원은 네이버 최수연 대표이사가 유일했다.
최근 여성 리더십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관한 논의는 단순한 ‘차별’ 이슈를 넘어 기업, 나아가 사회의 ‘지속성(sustainability)’차원에서 이해되고 있다. 여성리더는 하루 아침에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에서는 임원이 되기까지 통상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일반적으로 커리어 사이클은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구불구불한 커리어 사이클에서 차세대 여성 리더 후보군들은 자신만의 내비게이션, 동반자 그리고 레퍼런스 모델을 애타게 찾고 있다.
OECD 국가 중 10년간 유리천장 지수가 가장 낮은 한국의 여성 리더의 역할 중 하나는 자신의 일을 잘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외롭게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의 멘토와 레퍼런스가 돼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한 개인의 능력과 숙제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무한경쟁과 인구절벽에 직면한 오늘의 상황에서 이는 여성만이 아닌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하는 절실한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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