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지난 8일 일본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선거 유세 도중 총격을 받았다는 긴급 보도가 전해지자 한국 외교가에서는 사건에 따른 한일관계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무엇보다 범인의 정체가 걱정됐다. 범인이 혹시 한국 하고 관련성이 있다면 일본 우파의 상징인 아베 전 총리 사망으로 경색된 한일관계가 더욱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았던 탓이다. 이는 기우였다. 범인은 전직 자위대원이었다.
이후 정부의 대응은 발 빨랐다. 즉각 유감 표명과 함께 조문에 나설 뜻을 밝혔다. 여기에는 아베 전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따른 조문외교를 계기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모멘텀을 마련하겠다는 속내가 담겨 있었다.
차일피일 미뤄졌던 박진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 일정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일본 참의원 선거가 10일로 예정돼 일본 방문을 한 차례 연기했던 박 장관은 방일 시점을 언제로 할지 고민이었다.
박 장관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베 전 총리 조문을 계기로 일본 정부, 정치인들과 만날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최근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짧은 방일 기간 동안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과 한일 외교장관회담을 비롯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 예방과 누카가 일한의원연맹 회장, 모리 전 총리 예방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외교가는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 대해 절반의 성공으로 평가한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매각이 임박한 상황에서 한일 외교 수장이 해결책 조기 마련에 공감한 것은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일본 기업의 사죄와 배상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 접근은 없었다.
한일 양국 기업 등 제3자가 자발적으로 기금을 만들어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이른바 ‘대위변제’ 방안이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으나 피고 기업이 반드시 참여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피해자 측에서 나오고 있다.
여기에 달라지지 않는 일본 정부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이번 회담에 대한 일본 언론 반응을 보면 그들의 입장을 엿볼 수 있다.
NHK는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전에 (일본 측이)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한국 측이 강구할지 신중히 지켜본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 외무성 간부가 ‘한국 외교장관이 해결 의지를 보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실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도 한번 만났다고 한일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로 얽혀 있듯이 관계 개선이 단시일 내에 이뤄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20일 오후 귀국 후 김포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한일 간 얽힌 난제를 풀기 위해 조선통신사로 다녀온 느낌"이라며 "지금 한일 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소통과 신뢰를 회복해서 성신교린(誠信交隣)의 정신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라고 말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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